명13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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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아 댓글 0건 조회 1,718회 작성일 07-03-21 19:44본문
릉 하며는 황제무덤을 가리키고 명 13릉하며는 명나라 13명 황제 무덤을 말합니다.그러면 명나라에는 13명의 황제밖에 없었냐 하는데 실은 16명의 황제가 있었습니다.그럼 3명의 황제가 이쪽에 묻혀있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이 3명을 보며는 강서성 남경에 중산공안에 효릉이라고 있어 이쪽에 묻혀있습니다.
두번째로 이쪽에 묻혀 있지 않는 황제는 명나라 제2대 황제인데 명2대 황제는 주원장의 장손이 되겠습니다.주원장이 생전에 맏아들이 죽었기에 황제자리를 장손한테 물려준것입니다.주원장은 명나라를 건립하고 온 천하를 <주>씨 성으로 만들기 위하여 27명의 아들들을 각 지방에 보내여 각 지방 왕으로 봉했습니ㅏㄷ.각 지방 왕으로 된 주원장의 아들들은 자기 령역내에서 군권하고 행정권을 독립적으로 사용하다보니 웬간한 할거세력으로 되였는데 아버지 주원장이 황제자리를 어린 조카한테 물려주자 많은 삼촌들의 병권을 하나하나 빼앗기 시작했는데 역사에서는 <삭번>이라고 부릅니다.대부분 삼촌들의 병권을 빼앗은 어린 황제는 마지막으로 4째 삼촌 당시 북경을 지키고 있었던 <연왕>주체병권을 빼앗으러 하니 주체가 먼저 북경에서 1399-1402까지 <정난의 정변>을 일으켜 남경으로 쳐들어 갔다 .처음 정변을 일으켰을때 황제쪽 군사가 강했지만 주원장이 생전에 많은 개국 공신들을 참해 하다보니 싸움에 능한 장수가 없고 황제 자신이 어질다 보니 많은 기회를 놓쳐 결국에는 주체 반란군사가 남경에 있는 궁전까지 쳐들어 갔는데 그 당시 이미 궁전은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궁전에서 아무리 찾아도 황제 시체를 찾을수 없었는데 내시 한 사람이 불에 타고 있는 시체 한구를 가리키며 어린 황제라 했지만 얼굴이 확인 안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중국 력사상 명2대 황제는 <정난의 정변>에서 행방불명이 됩니다.(주원장의 넷째 아들 주체는 한국사에서 나오는 이성계 다섯번째 아들 이방원과 비슷한 인물임.역시 구테타를 통해 명3대 명성조로 되는 인물임).후에 주체는 많은 인력,물력을 동원하여 특히 정화가 33년 걸쳐 7번이나 해상실크로드를 연것고 황제 추적과도 관련된느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야사같은거 보며는 주원장이 임종시에 어린 손자한테 황제자리를 물려주는게 불안하게 생각되여 함 3개를 남기며 위급할때 열어보라 합니다.삼촌 반란군이 궁전까지 쳐들어 오자 어린 황제는 할아버지 주원장이 남긴 함을 열어 보는데 함속에 면도칼,도포,념주가 들어있어 급할때 절에 도망가라는거다 생가되여 내신 두명과 함께 절에 도망갔다가 나중에 태평도사로 북경에서 만년을 보냈다는 이야기인데 어디까지나 야사다보니까 명2대 황제 무덤이 있습니다.
세번째로 이쪽에 묻혀있지 않은 황제는 명나라 7대 황제인데 먼저 명6대를 보면 명6대 명영종은 황제 자리에 오른후 어릴때 스승으로 있었던 내시 왕건이라는 사람의 말을 잘 들었습니다.명영종 재위 때 원나라 때 몽고족 부락들이 자주 명나라 땅을 친입하는 일이 있어 명영종이 대신들하고 대책을 상의 하는데 내시 왕건이 명영종한테 <황제가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싸우면 크게 이길 것입니다.>라고 하자 왕건의 말만 듣는 명영종이 1449년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장성 북쪽 토목보라는 곳에서 예쎈이 거느린 돌궐족하고 싸우는데 중국사에는 <토목토전역>이라 부릅니다.한국사와 가깝다면 5년전 1444년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우리 글을 만들지요.1449년 <토목토전역>에서 명영종이 거느린 명나라 군사는 포위를 당해 전멸 당할뿐만 아니라 도망중 명영종 황제가 생포당합니다.
명나라는 하루라도 황제 없으면 안되였기에 그의 친동생이 명7대 황제로 되는데 그가 경태제가 되겠습니다.중국 관광하시는 분들이 <칠보>를 다 들어보셨는데 <칠보>는 경태제 때 민간에서 수공으로 만들어져 황궁에서만 사용하여 항제 호를 따서 <경태란>이라 부르는데 그때 당시는 푸른색이 위주였습니다.
문제는 경태제가 즉위해서 일년만에 옛날에 강햇던 웨라 종족이 두갈래 찢어지며 힘이 약해지자 명나라와 싸울 힘이 없어 생포햇던 명영종을 명나라에 돌려보냅니다.
이제 와서는 명나라에 황제가 두명 있게 되여 생포 되였다 돌아온 명영종이 태상황이 되고 그 동생이 그냥 황제 자리에 있지만 경태제는 형님이 살아 돌아온것이 불안하게 생각되여 7년동안 강금시키고 위부와 접촉 못하게 하였습니다. 7년후 어느 기회에 옛날의 신하들과 연계맺은 명영종이 궁전 정변을 일으켜 친동생 경태제를 잡을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있는 한 너는 황제가 될수 없다 하면서 그를 죽이고 그의 무덤을 13릉에 두지 않고 북경 서쪽 교외 40km떨어진 금산이라는 곳에 묻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명 16대황제에서 13명만이 이쪽에 묻혀있다하여 명 13릉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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