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여행이 국내최대 순수 여행커뮤니티 '드라이빙 세계여행'의 실크로드 여행의 진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실크로드는 동서문화의 접합지로 인간과 자연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이며, 고산과 설산, 삼나무 숲, 빙천, 순일무잡한 호수, 사막등 갖가지 독특한 자연 환경이 펼쳐진 곳입니다. 알자여행은 '드라이빙 세계여행' 회원님들의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이 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행일정 : 2005년 8월 16일(화)~24일(수)
여행경비 : 145만원
포함 : 항공료(국제, 국내), 공항세(국제, 국내), 유가할증료, 식사, 차량, 비자, 여행자보험, 가이드 및 기사(TIP 포함), 노팁/노쇼핑/노옵션
불포함 : 개인경비, 매너 TIP(포터, 객실), 현지에서의 생수비용
신청방법 : 드라이빙 세계여행 카페에 가셔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다음까페 '드라이빙 세계여행'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drivingtou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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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크로드 여행정보 ]
- 우루무치 우루무치는 톈산 북쪽, 준글(準?爾)분지 남쪽에 위치하고, 주위에 산과 물이 있어 비옥한 토지를 이루고 있다. 우루무치는 중국 최대의 자치구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구도(區都)이다. 우루무치는 생각보다 발전한 내륙 도시로 독특한 오락 문화를 갖고 있는 곳이다. 그중에 가장 흥미로운 것이 먹거리다. 우루무치에는 특색적인 음식과 특산품이 많다. 중국 거리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카오양로추알의 고향이 이곳이다. 원료가 신선하고 좋은 만큼 맛도 뛰어나다. 카오취안양(?全羊)은 1∼2살의 연한 양고기를 골라 씻어 가는 소금으로 간을 하고 생강, 계란, 밀가루 등으로 섞어서 만든 즙을 발라 낭캉(?坑)에 넣어서 찌는 요리이다. 밀봉한 낭캉은 고기의 향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때문에 고기가 특히 맛있다. 사오주아판(手?飯)은 쌀, 기름, 양고기, 당근, 양파 등으로 찐 후 만든 것이다. 포도 등의 재료로 만든 단 사오주아판은 관습에 따라 오른손의 엄지, 식지, 중지로 찍어 먹는다. 라티오즈(拉條子)는 품질 좋은 밀가루로 당겨서 만드는데 동그란 모양이며, 양고기 조각, 토마토, 고추 등 양념을 넣는다. 기술이 좋은 요리사는 10kg에 이르는 밀가루를 반죽할 수도 있고, 솜씨가 좋은 부녀자들은 국수를 길고 가늘게 당길 수 있고 어떤 것은 1∼2m에 달한다. 차오미엔(炒面)은 밀가루 조각에다가 기름, 양고기, 파, 토마토, 고추 등을 넣고 볶아서 만든 것으로 맛이 구수하다. 따판찌(大盤鷄)는 최근 들어 신장에서 유행하는 맛이 좋은 음식인데 쉽게 말하면 고추와 닭고기를 국수에 넣고 큰 접시에 담아 놓은 요리이다.
- 톈츠(天池, 천지)
우루무치의 여행은 톈츠(天池)를 시작으로 하는 것이 좋다. 우루무치에서 1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톈산 톈츠(天山 天地)는 백두산 천지보다 약간 작은 3㎢크기이고, 높이는 1980미터에 있는 고원 호수이다. 평균 수심은 105미터. 호수 뒤쪽으로 설상인 보꺼따펑(博格達峯)이 솟아있다. 호수에는 유람선이 떠다니고 천막집인 파오에서 숙박을 할 수도 있다. 겨울에는 스케이트 장으로 변신한다. 주(周穆王)과 서왕모가 이곳에서 만났다는 말이 있는 데, 후세 사람들이 갖다 붙인 것이다. 톈츠 지역은 우선 호수에서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스먼(石門)에서 시작된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출입구구 같은 길을 지나서 구비길을 지나면 시샤오톈츠(西小天池)를 지난다. 여행단에 따라 서는 데가 있다. 다음은 주차장인데, 주차장 위에서 유람선을 타면 달마동(達邙), 왕무먀오(王母廟)를 보고, 하이시마터우(海西碼頭)에 내릴 수 있다. 이 선착장에서 조금 들어가면 수이수산좡(水秀山莊)이 있는데, 2일 동안 머물 사람은 이곳에 여장을 풀어도 좋다. 표준방은 200위안, 4인실은 한사람당 80위안, 6인실은 100위안이다. 이곳에서 더 오면 민수원화춘(民俗文化村)도 숙박시설이 있다. 이곳에는 30위안짜리 도미토리도 있다. 우루무치의 호텔에서 아침밥을 먹은 후 차를 타고 가서 톈츠를 본후, 톈츠에서 점심을 먹고 말을 타고 호수와 산의 풍경을 구경한 후 차를 타고 호텔에 돌아올 수 있다. 톈츠는 고산이니 만큼 방한복을 착용해야 한다.
- 투루판(吐魯番) 투루판은 고대 비단길의 중요한 도시다. 부유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향기로운 포도, 과일의 고향이다. 이 지역의 과일은 농약을 뿌리지 않아서 씻기만 하고 그냥 먹어도 된다. 2,000여 년 동안 바람과 비를 맞으면서 아직도 서 있는 가오창(高昌), 지오허(交河)성, 베즈크리크(柏孜克里克) 천불동의 벽화, 천년된 시신을 보관하고 있는 아스타나(阿斯塔那) 무덤, 구조가 독특한 청나라 이슬람 건축인 수공타(蘇公塔),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훠얀산(火焰山), 웅장한 인공 지하 강인 칼징(坎兒井), 포도원 아가씨들의 사랑 노래, 별미가 있는 바자르(巴?) 풍습, 웨우알(緯吾爾)족의 노래와 춤, 2,400만 년 전 코뿔소 화석은 투루판을 고대 문화 역사 유산이 집중된 곳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 수공타(蘇公塔, 소공탑) 투루판시 동부 교구 2㎞의 포도향 무나거(木納格)촌에 있으며, 특이한 모양의 이슬람 고대 탑이다. 지금도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 영험한 탑이다. 수공타는 신장에 남아 있는 제일 큰 고대 탑이고, 서기 1778년에 건설되었다. 이 탑은 청나라의 유명한 장군인 투루판 왕 으민허주어(額敏和卓)의 둘째 아들인 수래만(蘇來曼)이 아버지의 행적을 기념하고 청나라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기 위하여 스스로 7,000량(兩) 백금을 내어 건설한 것으로, 높이가 44m나 된다. 이슬람 건축 사상 위대한 걸작으로 꼽힌다. 탑의 정상에 관측소가 있는데 사면에 창문 있어 아래를 내려다보면 북방의 톈산, 훠얀산, 푸타오거우(葡萄溝), 남방의 투루판시 주택을 모두 볼 수 있다.
- 지아오허구청(交河故城 교하고성) 투루판시 서쪽 10㎞의 얄내즈고우(雅兒乃孜溝) 30m 절벽의 평평한 마루에 있으며, 남쪽에 얀산(鹽山)이 있고 북쪽에 지오허(交河)가 있으며 지세가 아주 험하다. 주위에 물이 있기 때문에 도시의 형상이 버드나무 가지 같고 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땅이며, 남쪽에서 북쪽까지 약 1,650m이고 동서향 제일 넓은 곳이 약 300m인데 항공모함을 닮았다. 지오허구청은 처스치안부(車師前部) 왕국의 국도이고 당나라 유적지이다. 건설 구조가 독특하고, 세계에서 제일 크고 제일 오래되고 제일 잘 보존된 흙 도시다. 3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당대에는 안서도후부(安石濩府)가 건설되기도 했으며, 13세기에는 몽고의 침략을 받아 약탈되기도 했다. 성은 관부와 민가, 동문, 사원 구역 등으로 잘 구분되어 있다.
- 가오창구청(高昌古城, 고창고성)
웨우얼 언어로 두후청(都護城)이라고도 불린다. 즉 ‘왕성’이라는 뜻이다. 실크로드의 중요한 무역, 여행의 중심이다. 성은 기원전 1세기 때부터 건설됐다. 460년에는 베이량(北凉)왕조가 고창국(高昌國)을 건설했다. 이후 840년부터 1275년까지 가오창(高昌)은 후이구한(回?汗) 왕국의 수도였다. 627년 당나라 현장법사가 3년 동안 이곳에서 강의해 불교를 숭상하게 됐는데, 왕과 의형제까지 맺었다. 투루판시 동쪽 45m의 훠얀산 남쪽의 무터우가우(木頭溝)하 삼각주에 있고, 비단길에서 필히 지나야 되는 지역이고 중요한 대문이다. 한나라와 당나라 때부터 가오창은 중원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무역 거래가 아주 활발하고 세계 각지의 종교가 가오창을 통하여 내륙에 진입했으며, 세계 고대 종교가 제일 활발하고 발달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13세기에 몽고족의 침입을 받아 황폐화됐다.
- 아스타나(阿斯塔納) 무덤 아스타나 무덤은 투루판시에서 약 40여㎞ 떨어져 있고, 고대 가오창 왕국의 공공 묘지로 가오창 고성에서 2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동서로 5킬로미터, 남북으로 2킬로미터다.가족 단위로 각 구역을 분리해서 무덤이 형성되어 있으며 천연 자갈로 경계가 구분되어 있다. 무덤에서 문서, 묘지, 회화, 토우, 도자기, 목·금·석등 물건 및 고대 돈과 비단, 면모방 직물 등 진귀한 문물 10,000여 개가 출토되었다. 특히 여기서 발굴된 미이라는 이집트의 미라와 견줄 만큼 세계에서 유명하다. 무덤의 주인공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가는 법: 여행단에 합류해야 한다.
입장료: 20위안
- 베즈크리크(柏孜克里克) 천불 투루판 동쪽 45㎞의 훠얀산 중간 부분의 무가우허구(木溝河谷) 서안 절벽에 있는 석굴 사원이다. 남쪽이 가오창구청까지 15㎞이며, 신장의 비교적 크고 유명한 불교 석굴사 유적지 중의 하나이다. 현재 83개 동굴에서 40여개 벽화를 찾았는데, 총 면적이 1200평방미터일 만큼 벽화들의 규모가 크다. 20세기에 독일인에 의해 도굴되어 중요한 벽화들이 독일로 이동되었는데, 28폭의 가장 좋은 그림들이 전쟁중 폭격으로 사라지는 비극을 맞았다.
- 훠얀산(火焰山, 화염산) 투루판분지의 북쪽에 있고 동서 방향이며 길이가 100여㎞에 이르고 제일 넓은 곳의 폭은 10㎞이다. 훠얀산에는 풀 한 포기 없고 새 한 마리도 없다. 한여름이 되면 아주 덥기 때문에 연기가 많이 나고 빨간색의 산이, 날아다니는 용과 같으며 아주 웅장하다. 『서유기』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투루판시에서 동북향으로 10킬로미터 지점에 표지석이 있고, 경관이 가장 좋다. 이 훠얀산의 중간에는 남북 8킬로미터의 신선한 협곡이 있는데, 좋은 포도 산지로 유명한 푸타오거우(葡萄溝)다. 이곳에서는 13개종이 매년 6천톤씩 생산되는데, 중국에서도 최상질의 포도로 알아준다. 포도관련 시설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포도 등을 구입할 수 있다.
- 칼징(坎兒井) 칼징은 중국에서 동서를 관통하는 만리장성과 남북을 연결하는 따윈허(大運河)와 같이 유명한 중국 고대 3대 공사 중의 하나로서, 위대한 지하 수리 공사인데, 지하운하로 보면 맞다. 2,000여 년 전 한나라 때부터 초기 형태를 갖추었고, 비단길의 발전에 따라 점차적으로 서쪽으로 중앙아시아와 버쓰(波斯)에 전입했다. 칼징은 지면 경사도를 이용하여 지하수를 빨아들여서 관개한다. 통계에 의하면 투루판분지의 칼징은 1,237개가 있으며,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칼징은 853개이고, 총길이가 5,000㎞를 넘었으며, 물량은 10㎥/초이다. 제일 깊은 것은 90m 이상이고, 길이는 보통 3∼8㎞이며 제일 긴 것은 10㎞ 이상이다. 일반적으로 관광하는 칼징은 투루판 6킬로지점에 있다.
- 둔황(敦煌) 깐수 여행의 절정은 둔황이다. 둔황 석굴은 중국 석굴 가운데서도 가장 손꼽히는 데, 이 바탕에는 근대에 서구 문화재 약탈자들의 가장 큰 표적이 됐는데 있다. 실크로드 한 가운데서 자식과 아내까지 팔아가면서 석굴을 만든 장인들의 고통과 그 도굴의 역사가 있어서 둔황은 독특한 느낌을 준다. 둔황은 위치적으로 중국 서부의 가장 큰 산줄기인 칭장고원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중국 최대의 분지인 타리무(塔里木) 분지가 있고, 동쪽으로는 네이멍구 파단지린(巴丹吉林) 사막이 있다. 말 그대로 황량한 지형들의 중심에 있는 곳이다. 이런 둔황이 개발된 것은 한족 정복자 가운데 가장 강성했던 한무제다. 그는 원정(元鼎) 6년(기원전 111년)에 둔황을 도시로 만들었고, 상대적으로 힘이 있었던 당시에는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하지만 한제국의 멸망이후 선비, 돌궐, 티벳등 용맹한 이민족들이 이곳을 한족의 영토로 남겨둘 리 만무했다. 그러면서 마치 ‘스타워즈’에 나오는 우주의 한 도시나 서부영화에 나오는 무법자들의 도시처럼 존재했다. 실크로드의 중간이니 만큼 그 역할을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둔황은 동서양 문화를 만나는 중간역할이 늘어났고, 때문에 둔황석굴도 탄생했다. 또 방어기능을 담당해야 했기 때문에 양관이나 위먼관 등도 있다. 진(秦)나라 장성의 끝은 더 동쪽인 지아위관이지만 이곳의 장성들도 한대 등에는 그 역할을 했다. 그리고 모두 여행자원으로 남아있다. 또 일조량이 좋아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리광(李廣) 살구, 씨 없는 포도는 유명하다. 둔황시에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정결하고 호텔, 백화점과 음식점이 많다. 인구 6만 명인 작은 도시지만 여행객 50만 명이 와도 끄덕 없을 정도다. 전형적인 온대 대륙성 기후이고, 연평균 강우량이 39.9㎝이며, 연평균 기온이 9.3℃다. 둔황을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7~8월이다. 낮에는 덥지만 아침 저녁에는 시원하다.
- 뭐가오쿠(莫高窟 막고굴)
중국 3대 석굴 가운데서도 가장 거대한 유산으로 꼽히는 둔황 석굴은 전진(前晉) 건원(建元) 2년(기원전 366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북위(北魏)와 당(唐)대에 가장 활기를 띠었다. 둔황시 동남 25㎞, 따추안고우(大泉溝) 서쪽, 밍사산 동쪽의 절벽에 있다. 현재 492개 동굴, 2,400여 개 채색조각상이 있다. 일명 ‘치엔푸동’(千佛洞)으로 불린다. 이곳에 있는 45,000㎡의 벽화는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 중 규모가 제일 큰 ‘세계 예술 보고’이고, 1987년 12월에 유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한국인 미술학자 ‘서용’씨가 둔황학 연구를 위해 머물고 있다. 뭐가오쿠는 오전 8시에 문을 열며 빛도 오전이 참관하기에 적합하다. 모든 동굴을 다 참관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관광객들에게 개방한 30여 개 동굴만 참관할 수 있다. 국가급 동굴을 보려면 따로 입장료를 내야 된다. 가격은 비싸지만 뭐가오쿠의 정화를 보고 싶으면 뭐가오쿠 건너편의 둔황석굴(敦煌石窟) 보호연구진열센터에 가면 된다. 그곳에 있는 석굴 벽화와 조각상 복사품이 진짜와 거의 차이가 없다. 뭐가오쿠 내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입구 옆 보관소에 카메라와 가방을 맡겨야 한다. 둔황연구소 가이드의 인도 하에 모두 같이 참관한다. 가이드마다 열쇠를 갖고 있어 참관할 때 순서대로 동굴을 열고 곧바로 문을 닫기 때문에 자유로운 행동을 할 기회가 전혀 없다. 동굴 안은 광선이 미약하고 조명 시설이 없고 오로지 가이드의 손전등만이 광원이다. 잘 볼 수 있도록 입장권을 구매할 때 손전등을 임대하는 것도 좋다. 큰 동굴 안은 서늘하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사람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얇은 외투를 가져가는 게 좋다. 일반 여행자가 뭐가오쿠의 벽화와 조각의 시대를 분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므로 관심이 있다면 미리 둔황에서 뭐가오쿠 안내 책자를 구매하는 게 좋다. 둔황 벽화의 유명한 대표작인 ‘판탄피파지르톈’(反彈琵琶伎樂天)은 272호 동굴에 있으니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 밍사산(鳴沙山, 명사산) 밍사산은 둔황시 서남 5㎞에 있는 신비한 모래산이다. 밍사산은 산등이 칼과 같은 느낌을 준다. 다섯 가지의 색깔이 있는 모래가 부드럽고 미끄러워 사람의 발에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느낌이 매우 좋다. 위에야추안(月牙泉)은 길이가 240m이고, 넓이가 39m이며 깊이가 2m인 밍사산의 신비한 샘이다. 초승달 모양의 이 샘 안에 티에베이위(鐵背?), 치싱차오(七星草)가 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모래가 천수에 덮지 않고 천수도 마르지 않다는 것은 정말 기이하다. 이곳에서 모래(엉덩이를 직접 땅에 대고) 썰매나 스키를 탈 수도 있고 모래 치료, 모래 샤워도 할 수 있다. 밍사산을 등반할 때는 운동화나 샌들을 신도록 한다.
- 둔황민수보우관(敦煌民俗博物館, 둔황민속박물관) 둔황시 남교의 밍사산 밑에 있고 뭐가오쿠까지 25㎞이며 총면적이 7,920㎡이다. 박물관 안에 각종 고대 건축 품격이 있는 방 126칸이 있어 충분히 둔황의 풍속을 보여 주고 있다. 건축 양식은 둔황의 전통적인 바람과 모래를 막을 수 있고 도난을 방지할 수 있는 보루형 건축이며, 둔황 민박 건축 중 제일 유행하는 ‘쓰허위안’(四合院) 양식이다. 민속박물관 안에는 둔황의 민간 문화, 종교 신앙, 인생예의, 생신, 의식주행, 음식, 스낵, 혼인, 상사, 제사, 도자기, 생산 생활, 오락 경기, 상업 풍습, 명인의 서예와 그림, 문방사보, 옥 조각, 주보, 민간 자수 등 20여 개 전람실이 있다. 둔황의 민속 자료는 풍부하고 순박하다.
- 위먼관(玉門關 옥문관) 중국과 서역이 통하는 중요한 관문으로 한무제(漢武帝) 때 이광리(李廣利)가 페르가나원정(遠征:BC 104∼BC 103)이 개시되기 전까지는 관문은 둔황의 동쪽 교외에 있었고, 황허강(黃河)부근에서 서쪽으로 연장된 장성(長城)의 맨 끝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원정 결과 둔황의 오아시스가 군사기지로 발전함에 따라 서쪽 교외로 옮겨졌고, 양관(陽關)과 함께 서역(西域)으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이 되었다. 그 뒤 8세기 후반에 이르러 당(唐)나라가 쇠퇴하고 이 지방이 혼란에 빠지게 되자 위먼관은 다시 동쪽으로 옮겨져 안시셴(安西縣) 동쪽의 분수령 근처까지 후퇴하였다. 옥문관을 나와 타클라마칸사막 북쪽길을 따라가면 서역북도를 만나므로, 옛날에는 옥문관을 넘는 것을 출새(出塞)한다 했고, 만리장성 밖을 새외(塞外)라고 했다. 옥문관은 높이 10m의 사방형으로 633평방미터에 걸쳐 있고, 옥문관에 올라 멀리 바라보면 한대의 고장성(古長城)을 볼 수 있다. 또한 옥문이라는 이름은 당시에 이곳을 통해 교류하던 동서양의 물건들 중에서 다량의 옥석이 거래되어 붙여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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