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정보) 곤명의 공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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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남팀 댓글 0건 조회 1,560회 작성일 04-11-30 17:08본문
한 3년 전인가? 늦게 일어나 그 길로 학교가 아니라 공죽사를 향한 기억이 있다. 운남호텔 앞에서 불법 빠오처를 타고 가던 중, 공안의 검거로 빠오처비만 버리고 공안과 실랑이 끝에 싼 가격으로 공안이 잡아준 택시로 서양인 3명과 같이 향한 공죽사.
내 기억으론 내내 BambooTemple로 더 각인이 된 이 절을 한참 만에 찾아가보았다.
비가 솔솔 내리는 그 길에 이젠 희미해 져버린 나한상의 웃음만 기억해, 정문의 해태상?은 나를 처음 본 사람마냥 쌀쌀하게 대하는 건 비 때문일 거다.
3년전 이곳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은 외국인 3명중 유일하게 동양계였던 한 아주머니였는데, Kim이라는 사람을 운남에서 찾고 있다며, 그들은 내일 곤명을 떠나니 찾으면 연락을 달라며 이 메일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때 기억으로는 별별 상상을 다했던 것 같다.^^::
비가 내리는 공죽사는 예나 다름없이 좀 한가한 분위기 였다. 여전히 타오르는 향과 향을 불살르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정지된 느낌의 곳이다.
설설 돌아가는 뒤쪽의 대나무숲은 작은 규모이지만, 바람부는 날엔 그 울림이 상스럽지 않아 저절로 앉아 쉬게 된다.
<참조> - 공죽사와 오백나한 -
공죽사는 시와 약 18킬로미터 떨어져있으며, 곤명의 서쪽에 위친한 흑림포(黑林鋪)에서 옥안산(玉案山)쪽으로 방향을 틀어 3킬로미터 정도 가게되면 공죽사에 닿을수 있다.
이곳은 수림이 무성하고, 샘물이 항상 풍부히 흘러나온다. 예전에 전양육경중 이곳의 연못을 옥안청람(玉案晴嵐)이라 불렀다. 고대 사찰중 산세에 의거해서 지어졌으며, 삼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웅보전(大雄寶殿), 천대채각(天臺菜閣), 범음각(梵音閣)등이 있다.
첫번째 문을 통해 들어가면, 두개의 높고 거대한 공작수(나무의 일종)를 볼수 있다.
대웅보전의 앞으로 편액이 나무에 걸려있는데, 편액에 씌여진 글귀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으며,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이 절로나오게 만든다. 이 절은 곤명의 고광(高光), 고지(高智) 형제에 의해서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두형제는 사냥을 하던중 이곳에 다달았는데, 한 고승의 지팡이가 이곳에 박혀 움직이질 않자 두형제 힘을 합하여 뽑으려 했으나 역시 지팡이는 꿈쩍도 안했다고 한다. 그 후, 지팡이가 박힌 자리로 대나무가 숲을 이루며, 따라서 보산(寶山)에 영혼이 있다고 믿게 되었고, 이곳의 숲을 공죽(대나무지팡이)이라 부르게 되었다.
공죽사는 원대(元代)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여, 운남 제일의 불교단종으로 전입되었으며, 그 후로도 여러번 복원하였고, 현존하는 공죽사는 청(淸) 광서년(光緖年 1885 ~ 1891년)에 복원된 것이다.
이곳에 전시되는 유명한 오백나한 조각상은 당시의 성과라 할수 있는데, 청대 사천의 민간조각가 려광수(黎廣修)와 세명의 제자들이 약 칠년간에 걸쳐 제작한 역사적 기념물이다. 중국에는 적지않은 사찰들에 오백나한 조각상 같은 기념물이 있지만, 공죽사에 있는 오백나한상에 대한 예술적 평가가 가장 높으며, 따라서 동방 조형물중의 으뜸이란 찬사를 받기도 한다.
내 기억으론 내내 BambooTemple로 더 각인이 된 이 절을 한참 만에 찾아가보았다.
비가 솔솔 내리는 그 길에 이젠 희미해 져버린 나한상의 웃음만 기억해, 정문의 해태상?은 나를 처음 본 사람마냥 쌀쌀하게 대하는 건 비 때문일 거다.
3년전 이곳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은 외국인 3명중 유일하게 동양계였던 한 아주머니였는데, Kim이라는 사람을 운남에서 찾고 있다며, 그들은 내일 곤명을 떠나니 찾으면 연락을 달라며 이 메일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때 기억으로는 별별 상상을 다했던 것 같다.^^::
비가 내리는 공죽사는 예나 다름없이 좀 한가한 분위기 였다. 여전히 타오르는 향과 향을 불살르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정지된 느낌의 곳이다.
설설 돌아가는 뒤쪽의 대나무숲은 작은 규모이지만, 바람부는 날엔 그 울림이 상스럽지 않아 저절로 앉아 쉬게 된다.
<참조> - 공죽사와 오백나한 -
공죽사는 시와 약 18킬로미터 떨어져있으며, 곤명의 서쪽에 위친한 흑림포(黑林鋪)에서 옥안산(玉案山)쪽으로 방향을 틀어 3킬로미터 정도 가게되면 공죽사에 닿을수 있다.
이곳은 수림이 무성하고, 샘물이 항상 풍부히 흘러나온다. 예전에 전양육경중 이곳의 연못을 옥안청람(玉案晴嵐)이라 불렀다. 고대 사찰중 산세에 의거해서 지어졌으며, 삼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웅보전(大雄寶殿), 천대채각(天臺菜閣), 범음각(梵音閣)등이 있다.
첫번째 문을 통해 들어가면, 두개의 높고 거대한 공작수(나무의 일종)를 볼수 있다.
대웅보전의 앞으로 편액이 나무에 걸려있는데, 편액에 씌여진 글귀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으며,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이 절로나오게 만든다. 이 절은 곤명의 고광(高光), 고지(高智) 형제에 의해서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두형제는 사냥을 하던중 이곳에 다달았는데, 한 고승의 지팡이가 이곳에 박혀 움직이질 않자 두형제 힘을 합하여 뽑으려 했으나 역시 지팡이는 꿈쩍도 안했다고 한다. 그 후, 지팡이가 박힌 자리로 대나무가 숲을 이루며, 따라서 보산(寶山)에 영혼이 있다고 믿게 되었고, 이곳의 숲을 공죽(대나무지팡이)이라 부르게 되었다.
공죽사는 원대(元代)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여, 운남 제일의 불교단종으로 전입되었으며, 그 후로도 여러번 복원하였고, 현존하는 공죽사는 청(淸) 광서년(光緖年 1885 ~ 1891년)에 복원된 것이다.
이곳에 전시되는 유명한 오백나한 조각상은 당시의 성과라 할수 있는데, 청대 사천의 민간조각가 려광수(黎廣修)와 세명의 제자들이 약 칠년간에 걸쳐 제작한 역사적 기념물이다. 중국에는 적지않은 사찰들에 오백나한 조각상 같은 기념물이 있지만, 공죽사에 있는 오백나한상에 대한 예술적 평가가 가장 높으며, 따라서 동방 조형물중의 으뜸이란 찬사를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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