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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운남 여행기5-샹그릴라] 송이, 동충하초 삼계탕 즐기는 편안한 휴식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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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창완 댓글 0건 조회 4,918회 작성일 07-03-18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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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이 이상향으로 바라보는 '샹그릴라'
[중국 운남 여행기5-샹그릴라] 송이, 동충하초 삼계탕 즐기는 편안한 휴식터
btn_send.gifbtn_print.gif텍스트만보기btn_blog.gif  btn_memo_send.gif 조창완(chogaci)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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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온한 샹그릴라 초입 마을
ⓒ2004 조창완
리지앙에서 샹그릴라(香格里拉 원 지명은 중디엔(中甸)이다)까지는 200Km 남짓이다. 그곳에 들어가면서 만나는 작은 강들도 예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느긋하게 펼쳐 있는 고산 평원이다. 이곳을 본 순간 나는 너무나 평온해서 숨을 멈추고 드러눕고 싶다.

이곳의 주인은 소와 양, 혹은 돼지들이다. 물론 사람들도 있지만 이곳의 가축은 고삐와 별로 상관이 없다. 대부분은 그저 아무데나 놓아서 먹인다. 그들을 불러내는 것은 정기적으로 주는 맛있는 여물과 겨울에 사람들이 쌓아놓은 건초나 무우말랭이 정도다. 야생을 잃어버린 동물들은 그런 방식으로 가축이 된다. 그래서 아무데서나 거리를 활보하는 가축을 만날 수 있고, 더러는 도로가에게 교통사고를 당한 거대한 말의 시신을 만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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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에 여행을 같이한 이들의 모습
ⓒ2004 조창완
그런 초원을 한참 지나가면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작은 도시 샹그릴라가 나타난다. 실크로드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이 길은 윈난에서 생산되는 차를 티베트로 이동한다. 이 차는 멀리 인도까지 흘러가 동양의 향기를 서역에 전달했다.

샹그릴라현과 더친(德欽), 웨이시리수족(維西傈僳族) 자치현을 합쳐도 인구 35만 남짓한 이곳을 합쳐서 디칭(迪慶) 자치주로 부르는데, 중심도시인 샹그릴라는 그다지 크지 않다. 인구도 15만 남짓이다. 원래는 장족(藏族)이 주인인데 머지않아 한족이 50%를 넘을 전망이다. 내 친구 짜오(趙)도 한족과 장족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이제 한족의 습성이 더 익숙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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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타하이. 그들에게 이곳이 바다였다
ⓒ2004 조창완
우리가 샹그릴라에 도착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한국 음식점 야크바(yak bar)다. 리지앙에서 이곳으로 들어가는 이들은 대부분 중심로인 창지앙루(長征路)의 첫 머리에 있는 ‘한국음식’이라는 큰 간판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곳은 따리(大理)의 게스트하우스‘넘버3’에서 한국음식을 배운 한족 아가씨 장샤오펀씨가 만든 음식점이다. 한국음식은 물론이고 일본음식에 서양음식까지 한다. 당연히 음식 맛을 기대하기 힘든데, 이곳 한국음식은 상상 이상의 맛을 여행자들에게 선사한다. 특히 잘 익은 김치에 돼지고기를 송송 썰어 넣어 끓인 김치찌개는 일품이고, 50위안으로 좀 비싸지만 삼계탕은 두 사람이 포식하기에 충분하고 맛도 좋다.

4년 전 윈난을 여행할 때 쿤밍의 한 거리에서 조선족 동포의 한국음식에 감동했는데, 이제 순수 한족이 만든 한국음식에 감동한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우리 일행은 다음날 새벽에 터미널로 향했다. 배낭여행자들은 중국의 깊숙한 이곳까지 관심을 갖지만 교통 정보 등 인프라가 부족하다. 그걸 보충하려면 먼저 다녀온 이들이 자료를 충실히 챙겨서 다음에 오는 이들에게 전해야만 안전하고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년 봄에 샹그릴라에서 쓰촨 다오청(稻城)으로 향하는 길을 생각하기에 그 자료도 보강해야 한다. 새롭게 지은 터미널에 들러 버스 시간표들을 촬영하고 거리 식당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 계란부침인 젠빙(煎餠)과 녹두가 들어간 죽은 소박하고 편한 식사거리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사람들과 합류한다. 사실 여행자들은 이 작고 초라한 도시가 샹그릴라라는데 많은 실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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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두호의 야생화 군락
ⓒ2004 조창완
하지만 아침의 시원한 공기를 가르고 비타하이(碧塔海)나 수두후(屬都湖)로 가는 길을 향한다면 그래도 그 의심의 일정 부분이 풀릴 것이다. 고산이기 때문에 그다지 높이 자라지 못한 나무들과 드넓은 초원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는 장족 건축물들 특히 아침 준비를 위해 곳곳에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다보면 정지용의 <향수>의 한 구절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두 호수가 나온다.

비타하이는 과거 리지앙의 세도가였던 목씨(木氏)들의 별장이 있었던 곳이다. 호수와 그 호수를 둘러싼 곧은 침엽수림을 걷거나 말을 타고 돌면 너무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수두호로 가는 길이 갖가지 고산 식물들이 천연의 전시장 같은 느낌을 준다.

다시 샹그릴라로 돌아온다. 사실 이곳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편하게 먹을 식사가 없다. 다만 야크바를 이용할 경우 나름대로 즐거운 아니 더 행복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샹그릴라는 여행지이기 전에 천연 약재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다. 천마나 삼칠 같은 약재는 물론이고 7월에 채취하는 동충하초, 7월 말에서 9월 초까지 나오는 송이버섯 등은 여행자의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

창정루(長征路)에 있는 송이도매시장에서는 성수기에 100위안어치만 사도 10명이 족히 먹을 수 있는 양의 송이버섯을 살 수 있다. (물론 좋은 제품은 400위안 정도해야 한다) 송이버섯을 산 후 야크바에 와서 다듬어 달라고 부탁한 후 삼겹살이나 등심을 시켜서 먹으면 여행자들은 행복하다.

시간을 난다면 동충하초를 사서 야크바에 부탁해 삼계탕에 넣어 먹으면 좋은 보양식이 된다. 물론 동충하초는 10kg에 200위안(우리 돈 3만원가량) 정도 하기 때문에 스스로 넣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이 가격도 이곳 도매시장에서 살 수 있는 가격이고, 여행지에서는 보통 10kg에 800위안에 달하는 초특가 약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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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타하이의 매끈한 침엽수림
ⓒ2004 조창완
송이나 동충하초로 보신을 했다면 그 힘으로 여행을 더 할 수 있다. 샹그릴라는 도시 자체의 고도만 해도 3200m이고, 매리설산(梅里雪山)으로 여행하는 길은 4292m의 백망설산(白茫雪山) 고개까지 넘어야 한다. 따라서 일반인들이라면 머리가 아프고 몸이 으실대는 고산반응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물론 건강한 사람이라면 나이에 상관없이 이겨낼 수 있지만 곧바로 샹그릴라에 도착한 이들은 고산반응을 이기기 어렵다. 고산반응이 무서운 여행자는 홍징톈(紅景天)이라는 약을 먹거나 산소를 흡입하면 좀 낫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곳은 이곳의 음식을 섭취해 이곳과 동화되는 것도 필수다. 이곳에서도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격언이 예외일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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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부의 집. 번영과 쇠락을 같이 맛본 고택이다
ⓒ2004 조창완
샹그릴라 시내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아부(阿布)의 집이 있다. 샹그릴라 역시 중국 현대사의 질곡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을 증명하는 한 인물과 건물이다.

74세의 아부씨는 400년 역사를 가진 이 집의 주인으로 이 집을 여행자들에게 잘 설명해 준다. 아부는 문화대혁명 당시 부르주아로 낙인찍혀, 이 집에 쫓겨났고 그의 집은 당사로 쓰였다. 아부는 그 집 정면 벽에 쓰여진 ‘조반유리(造反有理 모든 반항과 반란에는 나름대로 정당한 도리와 이유가 있다는 문혁의 기치 중 하나)’라는 문구나 벽에 붙은 당시의 신문 등이 당시의 상황을 말해준다.

이 집은 차마고도의 영고성쇠를 그대로 체험한 집이다. 집 안에는 고급 포도주들이 있어 이제는 제법 산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노구를 이끌고 나에게 많은 것을 설명한다. 문제는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나로서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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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찬린스 문앞. 양을 안은 아이들이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준다
ⓒ2004 조창완
샹그릴라 도시 인근에는 작은 포탈라 궁중 하나로 꼽히는 쑹찬린스(松贊林寺)가 있다. 일명 귀화사(歸化寺)라고도 불리는 이 절은 1679년 달라이라마 5세와 청 강희제가 합심해서 건립했다.

운남과 사천을 통틀어 최대의 라마교(黃敎) 거루파(格魯派) 사원으로 작은 포탈라궁으로도 불린다. 자창(扎倉), 지캉(吉康) 등 양대 주전과 8개의 캉찬(康參 중간 단계사원), 300개의 작은 사원들이 있다. 사실 샹그릴라는 교통이 발달한 지금도 베이징에서 기차를 이용할 경우 4일 정도가 걸리는 곳이고, 걷는다면 아무리 빨라야 2년은 족히 걸리는 곳이다.

운남에 진을 치고 난을 일으킨 오삼계(吳三桂)를 쫓아서 이런 곳까지 힘을 뻗힌 강희제의 힘은 놀랍다 못해 경이로울 정도다. 어떻든 이 덕분에 중국 광물생산의 보고인 윈난도 중국의 영토로 확실히 편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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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늑한 초원 호수 나파하이
ⓒ2004 조창완
쑹찬린스에서 한 켠을 보면 아름다운 이라차오위앤(依拉草原)이 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 나파하이(納帕海)가 있다. 9월 너머에는 철새들의 낙원이 되는 이 호수까지는 현지인들이 모는 말을 타고 돌아본다.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호수는 편안해 보이고, 초원에 어우러진 말과 가축은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 평온해 보인다.

어떤 이들은 수두후나 비타하이를 샹그릴라 모습으로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이 나파하이를 샹그릴라 모습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무릉도원’이나 ‘이어도’를 찾아 헤매듯이 여행자들에게 샹그릴라도 그저 머릿속에 샹그릴라 일 뿐이다.

산에 오르면 내려 가야하듯 그들은 샹그릴라를 마음에 접어두고 다시 인간이 사는 곳으로 가야 한다. 개중에는 따리(大理)에서 눌러 앉아 ‘넘버3’를 만든 문영배씨 같은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분명히 이곳에 자신의 샹그릴라가 존재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부여된 직장과 일상, 집, 가족 모든 것에서 초탈하지 않으면 그저 샹그릴라는 말 속의 샹그릴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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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찬린스에서 본 샹그릴라
ⓒ2004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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