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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운남 여행기4-후토샤 트래킹]자연의 웅장함을 실감케 하는 아름다운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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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창완 댓글 0건 조회 4,751회 작성일 07-03-1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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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말리는 거대한 트래킹 여정
[중국 운남 여행기4-후토샤 트래킹]자연의 웅장함을 실감케 하는 아름다운 절경
btn_send.gifbtn_print.gif텍스트만보기btn_blog.gif  btn_memo_send.gif 조창완(chogaci) 기자   




리지앙의 다음 여정은 여행 중에 가장 힘든 과정인 후토샤(虎渡峽) 트래킹이다. 리지앙에서 봤을 때 후토샤는 위롱쉐산(玉龍雪山) 너머의 좌우에 있는 따쥐(大具)와 치아오토우(橋頭)라는 두 도시를 연결하는 진시지앙의 줄기다.

리지앙에서 따쥐로 갈 경우 위롱쉐산 입장료와 고성보수비 등 물경 120위안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따라서 배낭여행자들은 대부분 치아오토우에서 출발해 따쥐로 나오는 라인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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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난 소수민족들의 평안한 모습
ⓒ2004 조창완
사람들은 트래킹이라는 말에 설레는 듯하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 1학년때 처음 지리산을 다녀온 후 중국으로 떠나올 때까지 매년 지리산 길을 종주했다. 개인적으로 '자신을 말리는 여행'이라 이름하고 대부분 혼자서 그 길을 걸었다. 삶에 대한 열정에서 실연의 아픔까지 그 길에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물론 그 길이 나에게 아무것도 답해주지 않았지만, 길은 언제나 내려올 곳이 있음을 알려줬다. 때로는 헬기가 추락해 수명이 목숨을 잃은 현장 옆길을 걷기도 했고, 같이 한 벗과 사소한 다툼이 싸움으로 번져 안경을 망가뜨린 채 반봉사가 돼 내려온 길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시간이 되면 그 길이 그리웠고, 내 서른살 맞이도 벽소령 산장의 차가운 달 아래에서 맞았다. 그러다 중국에 왔고 나는 다시 지리산을 가지 못했다. 중국에서도 트래킹다운 트래킹이 없었는데, 다시 트래킹이라니 마음이 흥분되는 것도 당연했다.

아름다운 가로수 길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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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지앙디이완에 있는 홍군 장정 기념비
ⓒ2004 조창완
리지앙에서 트래킹의 시작점인 치아오토우로 가는 여정에 처음 만나는 것은 아름다운 가로수 길이다. 99년 아내와 떠난 여행에서 이 길을 지날 때는 이미 낙엽이 저버린 후였다. 아쉬움을 달래며 여름이나 가을에 이곳을 방문하자고 했는데, 이번에는 아내 대신에 손님들이 있다.

수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가로수의 도열은 가는 이들에게 위안을 준다. 그 길을 넘어서 다시 한 굽이 산을 힘겹게 넘으면 창지앙디이완(長江第一灣)이 나온다. 이곳은 창지앙이 발원지에서 흘러와 가장 큰 굽이를 형성한 곳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인 1936년 4월 26일 의외의 사람들이 이곳을 통과한다.

바로 허롱(賀龍), 린비아오(林彪) 등이 이끄는 홍 2, 6군단이다. 이들은 이곳을 지나 진사지앙(金沙江) 도하 작전을 벌인다. 이곳을 지나고, 다시 따두허(大渡河)를 건너면서 홍군은 힘을 얻고, 중국 공산화의 저력을 만들었다.

먼 시간 후에 찾아온 여행자들이 이것을 느낄 겨를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강가에 뿌린 땀방울과 피는 수십년만에 역사상 가장 부흥하는 중국을 만드는 기초가 됐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지는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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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에 쌓인 후토샤 모습
ⓒ2004 조창완
창지앙디이완을 통과할 물줄기는 동북진해 거대한 협곡으로 들어간다. 그곳이 바로 후토샤다. 네이멍구 초원과 중원을 통과하는 황허(黃河)가 후코우(壺口)폭포를 제외하고 별다른 협곡이 없는 반면에 창지앙은 발원 이후 거대한 협곡을 많이 지나고, 쓰촨과 윈난에서는 샹그릴라대협곡과 후토샤 등 빼어난 경관의 협곡을 많이 지난다. 그 가운데 후토샤는 가장 빼어난 절경인데, 중류에 있는 산샤(三峽)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리했던 트래킹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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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 구름을 벗은 후토샤 모습
ⓒ2004 조창완
우리가 치아오토우에 도착하자 비가 다시 거세진다. 등산은 물론이고 우산 없이 밖을 돌아다니기조차 힘든 비다. 일행은 출발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나눈다. 인솔하는 입장에서는 사람들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우선은 조심스럽다. 하지만 일단 가자는 의견이 많다.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기대가 컸다.

결국 현지인 가이드를 하나 고용하고, 일단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는 나시(納西) 게스트 하우스까지만 가서 결정하자는데 의견을 모은다. 오후 4시간 넘은 시간에 길은 시작됐다. 이미 2000미터 가까운 고도이기 때문에 조금만 올라기도 숨이 찬다. 하지만 모두들 부지런히 잘 걷는다. 중간에 힘이 부치는 두 사람이 말에 올랐다. 다행히 비는 서서히 잦아진다.

후토샤는 창지앙의 상류인 진사지앙(금사강)이 위롱쉐산과 하바쉐산(哈巴雪山)을 지나갈 때 형성되어 있는 거대한 협곡이다. 상류의 출발지는 치아오토우고, 그 끝점은 따쥐로 두 곳은, 30~40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다. 그런데 과거 이 협곡을 통과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강가에 난 도로를 타고 가는 로패스(lowpass)와 능선을 따라가는 하이패스(highpass)가 그 방법이다. 물론 낮은 길이 쉬운 반면에 높은 길은 백담사에서 봉정암 거쳐서 대청봉 가는 길 정도의 힘을 필요로 한다. 능선을 타는 시간만 해도 1박 2일 정도고, 차마(茶馬)게스트하우스에서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를 거쳐서 티나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길은 상당히 위험해 올해만 해도 일본인 관광객 2명을 포함해 5명이 희생된 난 코스다. 그런 코스를 비등산자들을 데리고 간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될 수밖에 하지만 길은 시작됐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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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가 도약해서 건넜다는 상투샤 모습. 가운데 바위가 디딤돌이다.
ⓒ2004 조창완
행렬 중간, 오늘 트래킹 지점을 놓고 논란이 오간다. 나시게스트하우스에서 멈추자는 쪽과 내일 일정을 위해 차마게스트하우스까지 가자는 쪽이다. 논란이 오가는 도중에 앞쪽과 뒤쪽의 거리가 멀어진다. 그러는 사이에 앞에 가는 이들은 나시 게스트하우스를 지나서 한참을 간다.

어쩔 수 없이 뒤처진 사람들도 차마게스트하우스까지 가야 한다. 나시에서 차마게스트하우스까지는 적어도 3시간 반에서 4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고, 도착 예정시간이 8시 반 가량이어서 어두워질 것이 뻔하다. 미리 단도리를 하지 못한 내 자신이 밉지만, 그래도 가능한 안전하게 길을 재촉해야 한다. 나시 게스트하우스를 지난다. 그런데 우리가 타고 간다고 언질을 준 마부 5명 가량이 졸졸히 따라온다.

그냥 돌려보내려는데, 앞으로의 길이 험하다고 그들은 계속 따를 태세다. 말 싸움을 하다가는 한시가 급한 데 방해만 될 것 같다. 그래서 오랜만에 중국인들에게 화를 낸다. 그들도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돌아간다. 다시 길을 재촉하면서 마음에 후회가 쌓인다. 결국 내가 화가 난 것은 적절하게 팀을 진행시키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한 자책이다. 그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적당한 타협선을 찾아서 돌려보낼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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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에 유실된 로우패스
ⓒ2004 조창완
나시에서 30분쯤 가면 산의 굽이가 나오고, 거기서 더 가면 마의 28밴드가 나온다.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28구비의 언덕길이다. 가이드가 앞의 몇 고개를 세자 그만하라고 부탁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가니 더욱 막막하게 느껴져서다.

이럴 때는 모르고 묵묵히 가는 게 남는 거다. 하지만 마의 고갯길도 금방 지난다. 28밴드 끝 해달 2670미터의 정상부에 올라서자 멀리 후토샤의 전경이 나타난다. 하지만 계곡은 비를 뿌리던 구름의 잔영으로 흐릿하다.

다만 그 자태가 만만치 않음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럼 느낌도 잠시 곧 밤이 어두워질 것이 뻔하기에 사람들을 재촉해 서둘러 차마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길을 재촉한다. 다행히 보름 전 날의 달이 구름사이로 작은 빛을 내어준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불빛이 보인다. 안심이 되지만 조심스럽게 밤길을 걸어서 차마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다.

살아있는 소수민족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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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서히 구름을 벗는 후토샤. 멀리 보이는 강가의 검은 돌이 중투샤 석이다.
ⓒ2004 조창완
그런데 이곳에서 복잡한 문제가 생겼다. 이미 게스트하우스에 손님이 꽉차 우리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을 증명하듯 게스트하우스의 이곳저곳에는 동서양의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여유를 찾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게스트하우스에 옮기는 것은 불가능한 시간이다. 그럼 노숙을 해야 하나.

중간에 계속해서 전화를 했지만 워낙에 오지여서 이동전화의 신호가 잘 터지지 않았기에 주인, 일명 나시마마(納西媽媽)에게는 죄가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오히려 미안한지 다양하게 고민한다. 우리가 간단히 저녁을 하는 동안 그녀는 미안하다며 옆에 있는 자기 어머니 집에서의 일박을 권한다.

한 침대에 두 사람씩 자야 하는 입장이지만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갑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멀지 않은 그 집으로 향했다. 힘겨운 몸을 침대에 눕히고 일찍 잠을 재촉한다. 잠이 들 무렵 갑자기 거대한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래층에서 자는 소들의 외침이다. 어두운 상태에서 들어가 잘 몰랐던 그 건물은 아래층의 축사고, 위층이 사람이 자는 전형적인 이 지역 건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게 뭐 대수인가 사람들은 하나둘씩 잠을 재촉하고 있었다. 다시 나시마마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선다. 다음번에는 절대 그런 일을 없을 거라며 전화를 하고 오라고 한다. 아직 사람들의 손때가 덜 묻은 탓인지 아주머니의 말에는 진심이 느껴진다.

여행자 혼 뺏는 후토샤의 웅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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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토샤에서 만난 아름다운 야생화
ⓒ2004 조창완
아침에 눈을 뜬다. 이미 어제 망가진 신발을 고칠 수는 없다. 5년 가량을 같이한 신발인데 이제 어쩔 수 없는 지경이다. 바닥이 거의 없는 신발을 끌고 상투샤(上渡峽)을 향한다. 상도협은 호랑이가 건넜다는 전설이 있는 3개의 돌 가운데 가장 상류에 있는 돌이다.

차마에서 상투샤까지 가기 위해서는 하산 길을 40분 가량 걸은 후 다시 1시간 가량을 걸어야 한다. 다행히 차를 불러서 우리는 10분만에 상투샤 입구에 도착한다. 상투샤에서는 여름에 잔인했던 산사태의 현장이 있다.

대부분의 길이 벼랑에 있는데, 여름에 그 중 후토샤 바라 위쪽이 폭우에 유실됐다. 수백미터 벼랑의 중간에 낸 길이 유실됐으니 차는 고사하고 사람들도 다닐 수 없는 게 당연하다. 12월에 재개공사가 끝난다지만 확신할 수 없다. 벼랑에 길을 내는 공사는 작은 실수로도 오히려 더 큰 곤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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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여행에 참여한 이들
ⓒ2004 조창완
상투샤는 호랑이가 건넜다는 3개의 바위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바위다. 누런 강의 중간에 서 있는 버위도 바위지만 그 바위와 강 건너 바위에는 교묘하게 짐승의 발톱에 난 상처 같은 줄이 그어져 있다. 강을 뛰어넘지 못하고 절규하던 호랑이들의 마지막 흔적을 볼 수 있는 줄이다. 후세 호사가들의 작명법이겠지만 이 정도면 봐줄만 하다.

누런 용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진사지앙의 물줄기와 그 가운데 자리한 후투스(虎渡石)는 여행자들의 혼을 뺏기에 충분하다. 다시 도로가 있는 로패스(lowpass) 길로 올라와 중투샤로 향한다. 길을 가면서 사람들은 거대한 협곡을 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한다. 거대한 위롱쉐산과 하바쉐산, 그리고 그 가운데를 관통하는 누런 진사지앙이 만들어내는 절경이니 그 규모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안타깝게 위롱쉐산의 정상부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추억 너머로 불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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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지앙 냇가에서 소원을 담은 배를 띄우는 이들
ⓒ2004 조창완
길을 재촉해서 따쥐를 향한다. 로패스(lowpass)에서 선착장으로 내려오는 길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아마드가 친구 네마자데의 집을 찾아 헤맬 때 나오는 것 같은 긴 언덕길이다. 반시간 만에 누런 강물 아래에서 한참을 기다려 건너편에서 온 배를 탄다. 빠른 진사지앙의 물 줄기를 작은 경운기 엔진으로 건넌다.

혹시 몰라서 하나의 엔진을 여분으로 두었다는 게 안심이라면 안심이다. 강을 건너는 시간은 10분 남짓으로 짧다. 다시 구불구불한 길을 재촉해 주차장에 이른다. 일행 중 몇이 미리 차를 흥정해서 지정한 차에 오른다. 그런데 그 차는 시골 마을버스 같은 차였다.

결국 이 마을 저 마을 들러서 지인들을 태워가는 버스다.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여행자들은 화를 내기 시작한다. 결국 일행 중에서 육두문자까지 나온다. 하지만 서서히 상황을 이해하면서 불만은 점차 포기로 바뀐다. 갑작스레 여행자들이 시골버스를 타고, 경유하는 시간보다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꼴이었다. 사실 중국의 시골은 우리 80년대 농촌의 모습과 같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아왔다.

여행자라는 이방인들이 그들에게 어떤 변화를 줄지도 모르는 그들을 놓고, 그들은 어쩌면 우리보다 더 두려움에 떨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본능적으로 그들의 미래를 개척해 간다. 그들이 모두 일어설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아니면 지구의 모습은 어떨까.

따쥐에서 리지앙으로 다시 나오는 길에는 왼편으로 위롱쉐산이 펼쳐 있다. 옥룡처럼 길게 늘어진 웅장한 설산을 두고 그들은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하지만 갈수록 올라가는 기온과 강수량의 증가로 인해 아름다운 옥룡은 이미 그 비늘을 대부분 벗어버렸다. 인간의 에너지에 대한 갈망은 커갈 것이고 옥룡은 그만큼 더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 옥룡이 죽어가는 날 인간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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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http://blog.naver.com/chogaci)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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