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화기행4] 쉬커의 <청사> 배경이 된 항저우 뇌봉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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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창완 댓글 0건 조회 3,649회 작성일 07-03-18 22:25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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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중심인 항저우 시후(西湖)의 봄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백거이(白居易 樂天 772~846)가 읊조렸듯이 제방에는 꾀꼬리 우짖고, 제비들은 새 집을 짓기 위해 진흙 밭을 뒤척인다. 그 위로 여행자들은 분주히 자신의 낭만을 찾아서 시후를 헤맨다. 시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구산(孤山)의 동쪽 끝에 있는 핑후추위에(平湖秋月)에서 바이티(白堤)를 지나 두안치아오(斷橋)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의 전설과 역사를 아는 이들은 이 길을 걸으면서 과거와 자신을 점철시킨 상회(傷懷)에 빠진다. 수많은 사랑과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이티의 원래 이름은 백사제(白沙堤)다. 그런데 백거이가 이곳을 워낙에 사랑해 그의 시 <전당호춘행(錢塘湖春行)>에 "버드나무 그늘이 백사제에 뻗어 있네(綠楊蔭里白沙堤)"라는 싯귀를 넣었고, 이후에는 그의 이름을 따 바이티(白堤)로 부르게 됐다. 지금도 연인들은 바이티의 벤치에서 회색빛 시후의 낭만과 반대편으로 늘어나는 화려한 불빛을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인다. 연인들에게 이곳이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가장 독특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담은 중국 전설이 이곳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냥 둘리 없다. 홍콩 뉴웨이브의 중심주자였던 쉬커(徐克)는 <영웅본색> 같은 홍콩판 느와르의 대척점에서 고전을 영화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것들이 바로 <천녀유혼>이나 <청사>같은 영화다. <청사>는 바로 두안치아오를 배경으로 하는 '백사전'(白蛇傳)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선악의 경계는 무엇인가
시후 동쪽 단교에서 거닐던 그들은 비를 맞은 선비 허선을 만나는데, 한눈에 반한 소정은 그에게 종이 우산을 빌려준다. 그리고 인연이란 쉽사리 끊어질 수 없는 것이어서, 그들은 다시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 허생(위싱궈(吳興國) 분) 역시 선비의 본분을 뒤로 하고 소정과의 사랑에 충실한다. 인간과 요괴의 이야기는 흔한 이야기지만, <청사>에서는 '권선징악'이라는 도덕률과 요괴의 멸망으로 끝나는 우리네 전설과 사뭇 다르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초반기 쉬커 감독의 카메라는 굳이 유가의 도덕률이나 구미호나 천년 묵은 구렁이 같은 이야기보다는 감정에 솔직한 사랑을 그려낸다. 분홍색과 청색 등 다양한 색을 사용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화면에 색정적인 요소를 많이 담았다.
둘레 15km에 면적 5.6㎦의 시후는 사실 그다지 큰 호수는 아니다. 거대한 타이후(太湖)나 칭하우후(靑海湖)에 비하면 굉장히 작지만 이 호수가 사람들에게 남다르게 다가가는 것은 이 호수에 얽혀 있는 수많은 고사와 역사적 인물들과의 추억 때문이다. 시후를 나누는 가장 중요한 제방은 백거이의 시에서 이름 붙여진 '바이티(白堤)'와 송대 시인 소동파가 쌓아서 이름을 얻은 '쑤티(蘇堤)'다. 바이티는 중국 근대 혁명가인 추진(秋瑾)의 묘를 비롯해, 항저우의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음식점인 로우와이로우(樓外樓), 10경 중 하나인 평호추월(平湖秋月)과 이웃하고 있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백소정과 허선이 만났던 두안치아오(斷橋)가 있다. 여름이면 이들의 사랑 이야기와 바이티로 나눠진 작은 호수 베이리후(北里湖)의 연꽃이 고귀한 모습으로 피어나 더욱 애상을 젖게 한다. 백소정과 허선은 결혼해 창지앙의 주요 거점 도시인 전지앙(鎭江)에서 장사를 시작하고 속세에서의 영화를 누린다. 이는 소정에게 전염병들을 치료하는 뱀들만의 비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인간과 뱀의 사랑에 걸릴 것이 하나 둘이랴. 전설에서 소정이 허선에게 바치는 사랑은 절대적이다. 그들의 첫번째 장벽은 허선의 호기심에서 생겨난다. 뱀은 단오날 황주(黃酒)를 먹으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허선은 장난으로 소정에게 황주를 권한다. 결국 소정은 뱀의 모습을 드러내고, 이에 허선은 놀라서 죽는다. 소정은 허선에 대한 사랑과 죄책감으로 목숨을 구하는 약을 얻기 위해 곤룬산까지 찾아간다. 그리고 곤룬산의 신선을 감동 시켜 그 약을 얻어내 허선을 구한다.
전설과는 달리 뇌봉탑이 세워진 것은 북송(北宋) 태평흥국(太平興國) 2년(977년)이다. 뇌봉탑은 오월왕(吳越王) 전숙(錢淑)이 사리를 봉안하는 탑이었다. 하지만 뇌봉탑은 두번의 파괴 역사를 거치면서 다양한 전설들을 지니게 되었다. 전설 아닌 전설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1924년 뇌봉탑이 무너진 사건이다. 뇌봉탑에 금 벽돌이 있다는 전설에 끌린 항저우 사람들은 모두 그곳을 찾아가 금 벽돌 찾기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그 벽돌에는 금 대신 금보다 귀한 불경 말씀이 적혀 있었다. 이 때 중국의 근대 지성 루쉰은 '뇌봉탑의 붕괴를 논하며'라는 글을 발표했다. "몇몇 정신 나간 사람들을 제외하고, 흰 뱀 아가씨를 탓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또한 법해(法海)가 괜한 짓을 벌인 것임을 탓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금산사를 물바다로 만든 것은 확실히 법해의 책임이 분명하다. 그가 기어코 시시비비를 가리려 했던 것은 아마도 질투심을 품은 때문이 아닌가! 그가 탑을 세울 당시 결국 이렇게 무너져 내릴 것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루쉰은 당시 일어난 논쟁의 중간에서 선입견으로 판단하기보다는 행위로 사태를 파악하자고자 했다. 즉 인간과 뱀의 경계를 나누기보다는 누가 인간을 위해서 선행을 베풀었는가를 물었던 것이다. 혼돈스러운 선과 악
법해는 뇌봉탑에 소정을 가두고 “西湖水乾,江湖不起,雷峰塔倒,白蛇出世”(서호의 물은 마르고, 강과 호수가 일어나지 않을진데, 뇌봉탑이 넘어져야만 백사는 세상에 드러나리라)라고 외쳤다. 하지만 영화에서 소청은 혼신을 다해 이 탑을 가르고, 허선과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소정을 구해 낸다. 사실 이 백사전 전설에서는 백사가 악역으로 등장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점차 <청사>의 이야기 구조는 변모되었고 결국에는 루쉰의 지적처럼 수단을 위해 선량하게 변한 대상에게까지 폭압을 부리는 법해와 구악으로 인식된 백사 중에 누가 진정 악한가를 묻는 것으로 변모한다. 쉬커 역시 루쉰의 질문과 유사하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쉬커는 천신만고 끝에 가까스로 아기를 출산하고 목숨을 잃는 백사와 수단에만 눈이 먼 인간보다는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뱀들에게 더 깊은 애정을 보낸다.
항저우의 밤은 여전히 휘황찬란하다. 안개가 낀 밤 거리에는 차에서 나온 미녀들이 수심 많은 나그네들의 발걸음을 유혹하고, 심지어는 택시 기사들까지 여행자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손님들을 술집으로 안내하기 바쁘다. 봄이 되면 녹음방초가 우거지고, 꽃들이 만발하면 그런 향취는 더욱 도시를 휘감싼다. 하지만 항저우는 그런 유흥의 뒷자리에 언제나 차고 음습한 기운이 있는 도시다. 이 때문에 시후 가 롱징(龍井)은 차의 나라 중국에서도 가장 빼어난 명차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차 나무는 본디 햇볕 쨍쨍한 곳보다는 사시사철 얇은 운무가 있는 곳에서 최고 품질을 만들기 때문이다.
쉬커가 영화를 통해서 표현한 것은 우리가 가진 몽환의 세계였다. 때문에 무리할 정도로 많은 색과 음악이 범벅되어 있다. 하지만 봄날 버드나무 늘어지고, 꽃향기 가득한 바이티의 뚝 위에서 시후의 내음을 음미하다 보면 세상사가 호수를 어지럽게 달리는 달처럼 부질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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