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시와 더불어…’ 낸 김풍기 교수
[한겨레 2004-11-13 15:09]
“마음 통하는 벗, 한시속에 수두룩” 자주 보아야만 친구일까. 단 한마디라도 가슴이 찡하게 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친구가 된 것일 터. 비록 살았던 시대는 달라도 이전 사람들 남긴 글 속에서 맘에 드는 구절을 발견하고, 지금 자신과 같은 심정임을 공감한다면 이미 세상을 떠난 그 사람들이 시공을 초월한 친구처럼 다가올 것이다.
맹자가 말했던 ‘상우(尙友)’가 바로 그런 것이다. 옛 사람들의 글을 읽다가 “맞아, 나도 그랬어”라고 공감하는 것, 그래서 남도 나와 같으며 사람 살아가는 게 결국 다 같다는 것을 확인하는 잔잔한 즐거움. 옛 사람의 글을 보며 그들을 동무 삼는 재미. 그게 ‘상우’다. 시를 읽는 이유도 상우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읽으며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시 가운데에서 특히 ‘한시’만큼은 좀처럼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 한자라는 걸림돌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벗으로 이어져 내려온 옛 시들이 요즘들어 점점 관심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다. 강원대 국어교육과 김풍기(43) 교수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옛 글과 요즘 사람의 거리를 좁히는 작업에 앞장서온 이다. 한양대 정민 교수, 영남대 안대회 교수 등과 함께 한문으로 쓰인 우리 고전들을 대중화하는 데 앞장서왔다. 김 교수가 새로 펴낸 수필집 <옛시와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는 한시들이 결코 과거에 국한된 구닥다리가 아님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먼저 한 것일 뿐임을, 그래서 지금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결코 교훈을 강요하는 법이 없다. 원래 한시가 그렇듯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부담없이 이야기할 뿐이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한시가 수백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진다면 분명 그 의미가 있기 때문이겠죠. 한시는 살면서 항상 같이 가는 친구 같은 겁니다. 우리 경험과 꼭 맞는 한시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거에요. 그러면서도 지금을 사는 우리와는 분명 다른 시각으로 새로운 창조성을 불러일으킨다는 점, 그게 바로 한시의 매력입니다.” 김 교수는 책에서 한시를 통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넘어가기 쉬운 일상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토록 엄격해보이기만 하던 조선 사대부들이 사실은 아내에게 술 권하는 낭만파들이었음을, 그들 역시 바쁜 세상 속에 치이며 살았고, 그래서 요즘 말로 하면 ‘웰빙’이랄 수 있는 ‘질 좋은 게으름’을 추구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넌지시 가르쳐준다. 삶의 졸가리가 잘 잡히지 않는다면, 그래서 도움말이 필요하다면 옛 사람들이 한시 속에 남긴 삶의 지층에 지금 우리의 경험을 한번 슬며시 대어보면 어떨까.
옛 사람들이 김 교수에게 그랬듯 ‘스승 같은 친구’가 되어주지 않을까.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원문: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03/2004/11/0091000032004111214310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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