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통이야기 1... 도움이 될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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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현숙 댓글 0건 조회 1,199회 작성일 04-03-25 00:00본문
민재님의 여행기를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베이징 독자 박현숙입니다. 첫날 저희가 후통여행을 했는데, 그 코스는 제가 제안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후통이야기들을 많이 준비했었는데
시간관계상 그것들을 여러분들께 풀어놓지 못한것을 늘 아쉽게 생각하고 있던차...민재님 여행기를 빌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 조금 써놓았던 후통에 관한 잡글들을 올립니다.
어여 다음 여행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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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은 미로같은 도시이다. 천안문을 중심으로 ‘환’이라고 부르는 둥근 고리모양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베이징 지도만으로는 그 미로의 정체를 파악할 길이 없다. 마치, 정면에서만 바라보면 끝없이 단조로운 건물들이 일렬횡대로 늘어선것처럼 보이는 자금성의 내부와도 같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속에는 크고 작은 미로들이 전봇대의 전선들처럼 촘촘하게 얽혀져 있어서 방향감각을 잃으면 좀체로 빠져나오기 힘든곳이 바로 베이징이다.
나이테만으로는 그 나이를 짐작할수 없는 베이징 길거리의 훼나무들처럼 베이징의 해묵은 세월들이나 그 세월들의 역사를 만들어온 베이징 사람들의 이야기도 미로처럼 알쏭달쏭 하기는 마찬가지다. 수많은 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베이징의 이야기들은 마치 양파껍질의 한겹한겹을 벗기듯이 늘 새로운 속살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베이징도 변화하고 있다. 미로같은 구불구불한 길들이 사통팔달로 활짝활짝 뻗어나가고 일년 삼백육십오일 새로운 건물들을 짓는 망치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아침이면 조롱속에 든 새를 데리고 ‘류자오’(아침산보)를 하고 점심뒤엔 따뜻한 햇살아래 삼삼오오 모여서 이런저런 세상잡일들을 화제로 노닥거리던 느긋하고 여유있던 베이징인들도 이제는 다 옛말이 되었다. “츠러마?”(밥먹었냐)라는 인사말이 “니 망마?”(너 바쁘냐)로 바뀐지도 오래다.
평균 두달에 한번 지도가 바뀔정도로 정신없이 변화하고 있는 베이징에서 이제는 토박이 베이징인들 마저도 “옛날에 우리는 어땠을까”를 기억하지 못한다. 흑백영화속의 한 장면들처럼 하나씩 하나씩 낡은 추억들이 되가고 있다.
후통(胡同, 작은 뒷골목)들도 그렇게 사라져 가고 있다. 언젠가는, 죽은 마오주석처럼 골동품 상점안의 기념품으로 전시되고 있을 것이다. 후통이 사라지면서, 사라지는 것은 비단 그 미로같은 베이징의 골목길만이 아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무수한 ‘ 베이징 이야기’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베이징에는 중국을 상징하는 수많은 건물들이 있다. 가보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천안문이나 자금성, 이화원등의 이름은 우리네 경복궁이나 창덕궁만큼 귀에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베이징에 ‘후통’ 이라는게 있다는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거미줄처럼 엉겨있는 그 작은 뒷골목안에 훼나무들의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있는 전설같은 베이징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사라져 가는 베이징 이야기들
‘작은 골목(뒷골목)’쯤으로 번역되는 후통은 주로 베이징의 서민들이 살고 있는 전통적인 주택가 골목을 지칭한다. 후통의 연원은 원나라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칭기스칸이 베이징에 수도를 정하고 원나라를 세울 당시, 주민들의 거주지역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서 몽고인들이 관할하게 되었는데 각 구역과 구역사이를 긴 통로로 분할했다. 바로 그 긴 통로가 오늘날 후통의 기원이다.
후통은 원래 몽고어의 ''Hottong''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말의 뜻은 ‘우물’을 의미하며, 당시 우물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중국으로 건너와 후통으로 변한 이 단어는 곧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을 지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해석에 의하면, 이것은 훠투완(火疃)이라는 단어에서 변형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구역과 구역사이를 구분짓는 긴 통로는 사람들의 보행로였을 뿐만 아니라, 화재가 났을때에는 주민 격리지역으로서의 역할도 했다고 하는데, 이 통로가 몽고어에서는 훠투완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후통은 지금까지도 베이징 곳곳에 그 ‘흔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 ‘흔적’들은 대부분 사라져가고 있다. 베이징에 개발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후통들은 ‘철거대상 1호’가 되었다. 황제나 고관대작들이 살았던 웅장한 건축물들은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지만,그 나머지는 모두 낡고 오래된것들로 폐기처분될 신세다. 후통도 그 ''낡고 오래된 것들‘가운데 하나이다.
낡고 오래된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베이징의 후통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골목과 주택들이 사라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어느 후통 보존론자는 후통의 소멸을 ‘베이징이 사라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을 상징하는 것이 경복궁이나 덕수궁같은 옛 황궁들이 아니듯이 베이징을 상징하는 것도 자금성이나 이화원, 천안문같은 ‘황제들의 땅’만은 아니다. 토박이 라오 베이징인들의 땅인 후통이야말로 베이징을 들여다 볼수 있는 진정한 문화유산 박물관이다. 그곳에는 오래된 술과도 같은 베이징의 깊은 맛이 들어있다. 또한 공식적인 역사에는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그 역사를 만들고 목격해왔던 수많은 베이징인들의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하여, 후통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안에 묻혀있는 베이징인들의 이야기와 집단적인 기억들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시간관계상 그것들을 여러분들께 풀어놓지 못한것을 늘 아쉽게 생각하고 있던차...민재님 여행기를 빌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 조금 써놓았던 후통에 관한 잡글들을 올립니다.
어여 다음 여행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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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은 미로같은 도시이다. 천안문을 중심으로 ‘환’이라고 부르는 둥근 고리모양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베이징 지도만으로는 그 미로의 정체를 파악할 길이 없다. 마치, 정면에서만 바라보면 끝없이 단조로운 건물들이 일렬횡대로 늘어선것처럼 보이는 자금성의 내부와도 같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속에는 크고 작은 미로들이 전봇대의 전선들처럼 촘촘하게 얽혀져 있어서 방향감각을 잃으면 좀체로 빠져나오기 힘든곳이 바로 베이징이다.
나이테만으로는 그 나이를 짐작할수 없는 베이징 길거리의 훼나무들처럼 베이징의 해묵은 세월들이나 그 세월들의 역사를 만들어온 베이징 사람들의 이야기도 미로처럼 알쏭달쏭 하기는 마찬가지다. 수많은 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베이징의 이야기들은 마치 양파껍질의 한겹한겹을 벗기듯이 늘 새로운 속살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베이징도 변화하고 있다. 미로같은 구불구불한 길들이 사통팔달로 활짝활짝 뻗어나가고 일년 삼백육십오일 새로운 건물들을 짓는 망치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아침이면 조롱속에 든 새를 데리고 ‘류자오’(아침산보)를 하고 점심뒤엔 따뜻한 햇살아래 삼삼오오 모여서 이런저런 세상잡일들을 화제로 노닥거리던 느긋하고 여유있던 베이징인들도 이제는 다 옛말이 되었다. “츠러마?”(밥먹었냐)라는 인사말이 “니 망마?”(너 바쁘냐)로 바뀐지도 오래다.
평균 두달에 한번 지도가 바뀔정도로 정신없이 변화하고 있는 베이징에서 이제는 토박이 베이징인들 마저도 “옛날에 우리는 어땠을까”를 기억하지 못한다. 흑백영화속의 한 장면들처럼 하나씩 하나씩 낡은 추억들이 되가고 있다.
후통(胡同, 작은 뒷골목)들도 그렇게 사라져 가고 있다. 언젠가는, 죽은 마오주석처럼 골동품 상점안의 기념품으로 전시되고 있을 것이다. 후통이 사라지면서, 사라지는 것은 비단 그 미로같은 베이징의 골목길만이 아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무수한 ‘ 베이징 이야기’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베이징에는 중국을 상징하는 수많은 건물들이 있다. 가보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천안문이나 자금성, 이화원등의 이름은 우리네 경복궁이나 창덕궁만큼 귀에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베이징에 ‘후통’ 이라는게 있다는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거미줄처럼 엉겨있는 그 작은 뒷골목안에 훼나무들의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있는 전설같은 베이징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사라져 가는 베이징 이야기들
‘작은 골목(뒷골목)’쯤으로 번역되는 후통은 주로 베이징의 서민들이 살고 있는 전통적인 주택가 골목을 지칭한다. 후통의 연원은 원나라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칭기스칸이 베이징에 수도를 정하고 원나라를 세울 당시, 주민들의 거주지역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서 몽고인들이 관할하게 되었는데 각 구역과 구역사이를 긴 통로로 분할했다. 바로 그 긴 통로가 오늘날 후통의 기원이다.
후통은 원래 몽고어의 ''Hottong''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말의 뜻은 ‘우물’을 의미하며, 당시 우물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중국으로 건너와 후통으로 변한 이 단어는 곧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을 지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해석에 의하면, 이것은 훠투완(火疃)이라는 단어에서 변형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구역과 구역사이를 구분짓는 긴 통로는 사람들의 보행로였을 뿐만 아니라, 화재가 났을때에는 주민 격리지역으로서의 역할도 했다고 하는데, 이 통로가 몽고어에서는 훠투완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후통은 지금까지도 베이징 곳곳에 그 ‘흔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 ‘흔적’들은 대부분 사라져가고 있다. 베이징에 개발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후통들은 ‘철거대상 1호’가 되었다. 황제나 고관대작들이 살았던 웅장한 건축물들은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지만,그 나머지는 모두 낡고 오래된것들로 폐기처분될 신세다. 후통도 그 ''낡고 오래된 것들‘가운데 하나이다.
낡고 오래된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베이징의 후통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골목과 주택들이 사라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어느 후통 보존론자는 후통의 소멸을 ‘베이징이 사라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을 상징하는 것이 경복궁이나 덕수궁같은 옛 황궁들이 아니듯이 베이징을 상징하는 것도 자금성이나 이화원, 천안문같은 ‘황제들의 땅’만은 아니다. 토박이 라오 베이징인들의 땅인 후통이야말로 베이징을 들여다 볼수 있는 진정한 문화유산 박물관이다. 그곳에는 오래된 술과도 같은 베이징의 깊은 맛이 들어있다. 또한 공식적인 역사에는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그 역사를 만들고 목격해왔던 수많은 베이징인들의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하여, 후통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안에 묻혀있는 베이징인들의 이야기와 집단적인 기억들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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