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운의 북경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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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민재 댓글 3건 조회 1,287회 작성일 04-03-25 00:00본문
아마도 중국 각지의 젊은이들이 돈없고 빽없이 북경에 와서 제일 손쉽게 일할 수 있는 게 바로 인력거를 끄는(물론 대체로 지금은 자전거 아니면 오토바이 이지만) 일이지 않을까 싶다. 나와 정연조 선생이 함께 탄 인력거의 운전수인 펑쯔하이(馮志海, 38)란 친구도 아마 마찬가지리라... 이 친구에게 좀 더 많은 것을 묻고 싶었지만, 그는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내가 왜 그 이유를 모르겠는가... 후통 뿐이 아니라 천안문 바로 앞에도 저녁때면 무수히 많은 인력거꾼들이 있다. 지난번엔 그 인력거를 타고 왕푸징으로 갔었다. 나는 사실 여행객이기 이전에 동시대인으로서 이들을 취재하고 이들을 이해하며 대화하고 싶었지만, 자칫 오만한 일이 될 수 있다는 머뭇거림과 또한 부족한 시간 때문에 그저 일방적으로 짐작만 할뿐이다. 그러다보니 자연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에 나오는 김첨지, 혹은 라오서의 ‘루어투어씨앙즈(駱駝祥子)’의 씨앙즈를 떠올리는 정도로밖에 더 이상 무슨 유대감을 갖길 기대하겠는가...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지만, 적어도 이렇듯 밝은 표정의 많은 인력거꾼들 미래는 1920년대, 30년대의 소설속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겠는가.....
라오서(老舍)의 ‘루어투어씨앙즈’.... 생각해보시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번역된 현대 중국소설가(옛날 中共의)의 소설이 바로 김용옥이 해제를 달고, 최영애가 번역한 ‘루어투어씨앙즈’였다는 사실을.... 200 페이지가 넘는 도올 특유의 해제와, 그의 부인이자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우리나라 중국언어학(漢字學)의 대가인 최영애 선생이 바로 80년대 중반에 이 소설을 번역해 출판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이번 여행에서 우연히도 왕푸징의 라오서 기념관을 찾았고, 또 마지막날 밤에 ‘라오서차꾸안(老舍茶館)’을 가보게 된 것도 참 희한한 인연이다. 루쉰과 더불어 현대 중국문학, 중국혁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라오서.... 그 자신의 초상인 ‘씨앙즈’를 다시 한번 차근히 읽어볼 일이다.
어쨌든,,, 라오서 이야기는 잠시 미루어두고, 빗나가는 이야기를 다잡아,, 다시 후통(胡同)을 둘러보자.. 후통도 자금성 못지 않게 이야기거리 많고 흥미로운 주제이다. 이 후통에 대해서는 이미 ‘3인3색 중국기’에서 정길화 선생이 한 챕터로 삼아 말한 바 있다. 정선생 말대로, ‘북경자전거’는 후통을 배경으로 농촌과 도시, 전통과 개혁개방의 모습을 대비켜 중국식 자본주의를 돌아보게 만든 영화로서, 나도 비디오로 본 바 있다. 하지만 그때는 후통에 대해 별 생각이 없어서 우리나라 여느 골목과 비슷한 후통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진 못했다. 다른 책을 찾아보니, 상해에서는 이것을 ‘농(弄)’이라 한다고 한다. 또 상해의 농은 종횡으로 교차하여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한데 반해, 북경의 후통은 대로처럼 동서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고증에 의하면 문헌상의 후통은 ‘후퉁’이라는 알기보기 힘든 한자로 기재된 경우가 많았는데, 맨 처음 이 단어가 등장한 시기는 원나라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후퉁이 몽고어의 ‘훠터(活特)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란 뜻이니, 제법 그럴듯한 설득력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예전에 어느 책에서 본 바에 의하면 이와는 전혀 다른 해석도 있는 듯하다.
북경이 지금같은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은 명나라 때부터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도시구획 등은 이미 원나라가 이곳에 ‘대도(大都)’를 건설했던 13세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보자.
“대도의 성 안은 붓털처럼 많은 대로와 골목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사이사이 거대한 성문들이 마주하고 있고, 길가 양쪽에는 아름다운 집과 상점들이 즐비하다. 내성 안의 거리와 골목들은 구획정리가 잘 되어 마치 장기판을 보는 것 같다....”
이상의 기록들에서 후통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한편 지금까지의 기록에 의하면, 현재 베이징에는 약 6,000여 개의 후통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이 또한 그나마 제법 규모있는 후통의 숫자이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무명의 후통 숫자는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 본 그 무수한 후통 중의 하나, 쓰허위엔(四合院)이 있는 후통의 이름은 무엇일까.... 참고로 말하면, 후통의 이름들은 인근 자연경관이나 생활용품, 인물 성씨 등을 비롯, 화초나 수목, 우물, 연못 같은 일반 서민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경에는 왜 이렇게 후통이 많을까... 그 설도 분분하지만, 내가 생각건대 가장 합리적인 이유는, 평소 널찍한 대로는 마차나 말을 이용해 황성과 내성의 관청을 드나드는 고관대작들의 행차가 너무 많아 이런 골목들이 발전하게 되었다는 설이다. 내가 굳이 이 설을 지지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 서울 종로의 뒷골목 ‘피맛골’의 어원이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피맛골’이 무슨 붉은 피와 연관되어있다고 착각하는데, 사실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종로 한복판에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고관대작들이 말을 타고 지나다녔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멈추어 부복하며 예를 표시해야 했다. 이러다보니 바쁜 시장통의 사람들에겐 그들이 마음껏 활개치며 다닐 수 있는 골목길이 필요했고, 그래서 생긴 것이 ‘피맛(避馬)골’이다. 한자 뜻으로 해석하자면 ‘말(馬)을 피(避)해서 가는 골목’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서울과 북경의 인구는 예나 지금이나 숫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으니, 이 또한 단순비교를 통해 전적으로 지지하기는 어려운 설이라 하겠다.
옛날에는 고관대작의 행차를 피해가던 그 후통을, 우리는 지금 버젓이 신식 인력거를 타고 행차하고 있으니,,, 본래 후통의 취지에 어긋나는 관광이 아니겠는가....^^ 우리 일행은 경산공원의 동북 모서리에서부터 골목길, 즉 후통으로 들어섰다. 교통신호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이들 인력거의 행렬에, 옆에 같이 탄 정연조 선생이 연신 놀랍고 신기해한다.. 정선생은 이번이 중국 초행길이라 그렇지만, 당장 내일부터 거리를 걸어보다보면 그들 특유의 룰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리라...^^ 우리는 잠시 후 내려서 후통 골목 안의 삶의 현장, 시장부터 둘러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번 북경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시침은 막 오후 4시를 넘고 있었다.
<계속>
댓글목록

조민재님의 댓글
조민재 작성일
정말 쑥스럽습니다. 지도는 이미 조선생님한테 말씀드렸던 내용이지요... 헌데,,,아무도 불평불만없이 다들 너무 좋았다 하니,, 이거 남들이 보면 순 거짓말인줄 착각할까봐 제가 애써 다시한번 트집잡은 건데요... 왜 100점 말고 95점 주는 그런 심정... 아시죠? ^^
저 역시 하선생님보다 잘 만들 자신은 없답니다. 실제로 어제 다시 보면서 제가 놓쳤던 알짜 내용들을 더 찾아볼 수 있었어요..
앞으로 미니책자를 만들때마다 지금처럼 앞부분은 같은 내용 그대로 항상 실렸으면 좋겠습니다. 즉 ''중국은 어떤나라?'', ''중국 왕조의 흐름'', ''여행자 정보'' 등 세 부분은 중국에 갈 때마다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좋겠어요. 그런데 책자가 좀 커서 편하게 주머니에 휴대하기가 수월치 않으므로,, 크기를 현재 사이즈의 절반 정도로 줄여주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지도가 실리지 않은 덕분에 조선생님, 박선생님 많이 귀찮게 해드렸고, 그래서 실은 묻고 얘기할 기회가 많아 더 좋았답니다...^^

하경미님의 댓글
하경미 작성일
마음약하신 민재님 제가 너무 미안하게
왜 그리 미안해하서요. ㅋㅋㅋ
전 도리어 고마운걸요. 프로이신 민재님이 칭찬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구요. 첫시도한 미니책자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거든요. (전 60점을ㅋㅋㅋ)
고맙구요. 증말루 2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외의 많은 분들이...
하경미님의 댓글
하경미 작성일제가 생각했던 후통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의미로도 생각해 볼수 있겠네요..
피맛골이 그런뜻이였구나..
우와 굉장히 좋네요..
그리고요..
미니책자 제가 편집한겁니다.
흑흑~~
초보치고는 잘했다고 해주서요..
담에는 지도 넣을께요.. (휴 한숨쉬는 껑메이 ㅋㅋㅋ)
다음편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