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 여행기3-루구후] 흔들리는 모계 사회 '루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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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창완 댓글 0건 조회 1,503회 작성일 04-09-30 23:47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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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에 따라 우리는 오늘 루구후로 간다. 리지앙을 빠져나온 버스는 한참 후에 구절양장의 길에 접어든다. 멀리 장강(長江 양쯔강)의 상류인 진사지앙(金沙江)의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까지 가는 길이 정말 아찔한 S자 협곡이다. 그 길을 지나 다시 한참을 가다가 강가의 작은 집에서 잠시 휴식한다. 귀여운 꼬마들이 파는 작은 사과를 사서 버스에 탄다. 손님들에게 한 개씩 주고, 나도 한입 깨물자 달콤한 사과 본연의 향이 난다. 중국 여행의 가장 즐거운 맛 가운데 하나가 각 지방의 과일이나 특산물을 맛보는 것이다. 물론 쓰촨이나 운남처럼 대부분의 과일이 우리의 입맛에 맞는 지역도 있는 반면에 먹기조차 힘든 과일도 많다(가령 충칭의 어른 머리 만한 유자(油子)처럼) 8월 신장의 하미과나 포도, 9월 시안의 석류 등 정말 맛있는 과일들이 많다. 이런 맛의 모험이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자신이 다니는 곳을 더 즐겁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시 강을 벗어나 거대한 협곡과 능선을 지나간다. 더러 비로 인해 거대한 낙석이 길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버스가 지날 때 '저 돌이 떨어지면…'하는 하는 아찔한 생각을 한다. 그런 길을 계속 가다보면 생과 사가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또 거대한 자연 앞에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도 실감하게 된다.
루구후의 전경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오후 2시가 넘어간다. 루구후(瀘沽湖)는 해발 2680m에 있는 거대한 호수다. 경관으로 보면 그다지 빼어나지 않은 이곳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드물게 남아 있는 모계사회의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경자씨가 이곳을 방문해 <모계사회를 가다>라는 책을 냈다. 그런데 사실 이곳뿐만 아니라 샹그릴라로 불리는 지역 대부분이 모계 사회 전통을 갖고 있다. 우리가 여행할 밍융(明永) 빙천쪽의 한 마을도 한 여성이 한 형제들과 결혼해 4형제와 같이 사는 집안도 있는 등 여성이 중심되는 가족구조를 갖고 있다. 그 가운데 루구후쪽이 가장 유명한데, 이곳의 가족은 가장이 되는 한 여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집안의 좌장인 여성이 있고, 집안은 그녀가 낳은 아이들이 중심이다. 그 집안의 성인 남녀는 그 여성의 형제들로 실권은 그 누이에게 있다. 아이들의 삼촌격인 남성은 누이의 집을 거들다가 마을에서 5~10명까지 있는 파트너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결혼아닌 결혼의 형태를 유지한다. 이것을 주혼(走婚)이라고 하는데, 그 파트너의 집에 가서 하룻밤을 머물더라도 새벽 5시전에는 그 집을 빠져나와야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형태의 결혼 형태가 생긴 것에 대해 인류학자들은 이 지역이 상대적으로 척박해 축적할 만한 사유재산을 갖지 못한 환경 때문이라고 대부분 분석한다. 루구후도 호수가 있지만 그다지 생산성이 높지 않고, 주변에 있는 매실 채집이 생산의 기본이다 보니 그런 문화가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남자들은 일이 없어 탑돌이나 하고, 놀면서 경제적인 실권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 워낙에 척박한 땅이라 남성 중심보다는, 많은 성적 기회가 부여되는 여성 중심사회가 대를 잇는 데 유리한 측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50평방킬로미터의 루구후의 평균 깊이는 40m이고, 제일 깊은 곳은 93m다. 여행자들은 보통 호수의 한켠인 뤄수이춘(落水村)에서 배를 타고, 호수의 중앙에 있는 리거다오(里格島) 등을 여행한다. 우리도 호숫가로 내려가 전통적인 돼지가죽 배는 아니지만 조각배를 타고 호수로 향했다. 그런데 배를 젓는 이들의 대부분은 남자사공이다. 간간히 여자 사공이 리드하는 배도 있지만 남자들이 중심이다. 과거 같으면 당연히 놀아야 할 남성들이 집도 짓고, 배도 젓는다. 뭔가 변화의 조짐이 느껴진다. 호수의 중앙 리거다오는 그다지 볼거리가 많지 않다. 중앙에 장족 불교 사원인 리우비다오가 있고, 위에는 장족 탑이 있다. 안내자가 문화대혁명 당시 이 탑이 훼손됐다고 한다. 도대체 문혁의 잔재가 이 정도였다 싶으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양을 싫어하는 이들이 있어서 돼지 바비큐를 주문하고 이 지역 주인인 모수오주(摩梭族)의 전통 공연을 보기 위해 공연장으로 모였다. 공연장에는 족히 300~400명이 되어 보이는 구경꾼이 모여 있다. 조용한 작은 도시에 이렇게 많은 여행자가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모수오족의 전통공연은 가운데 장작불을 피우고, 주변을 돌면서 집단으로 춤을 춘다. 춤이 끝나자 여행자들이 나와서 각기 장기자랑을 한다. 선양(심양)에서 온 한 여행객은 예술학교의 교수인데, 인기가 본 공연보다 더 많다. 하지만 난 가무에 능하지 않아선지 그다지 흥미는 없다.
호텔에 돌아오니 마당에서 통돼지와 양 다리 하나가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 다만 요리를 하고 있는 이들은 많이 해보지 않아선지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이다. 이번 여행길에 만난 술 가운데 가장 빼어난 루구후(瀘沽湖) 백주와 맥주가 나오고, 서서히 술자리는 익어간다. 바비큐를 진행하는 이들은 이곳을 지휘하는 안주인을 비롯해 두 명의 남동생과 두 명의 여동생들이다. 이 안주인을 중심으로 형제들이 운영하는 호텔인데, 그다지 작은 규모는 아니다. 술이 한두 잔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쏟아진다. 이 형제들은 평균 주량이 백주 3병(소주로 치면 족히 10병)이라는데, 술잔이 돌아가자 마바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 이 친구들에게 주혼에 관해 물으니 잘 생긴 동생은 10명 정도의 주혼 파트너가 있고, 형은 6명 정도의 주혼 대상이 있다. 여주인의 여동생들도 나서서 노래를 부르는데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아주 목청이 좋다. 공연장과 달리 이들도 오락을 즐기는 데 익숙하다는 것을 생각한다.
아침에 그 남동생을 동행해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가진 모수오족 가족을 방문했다. 집 안은 벽난로를 중심으로 철저히 여성 중심의 위계 구조를 갖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막걸리와 거의 유사한 술과 집 안에 저장하는 훈제 돼지고기다. 그 집 안에도 큰 돼지 5마리 정도가 쌓여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30년 가량 넘었다고 한다. 땔감이 만들어내는 그을름이 그 돼지의 부패를 막는 등 신비한 느낌을 주는 고기 저장 방식이다. 겨울에 별다른 식량이 없었던 이들로서는 어렵사리 만들어낸 방식일 것이다. 또 집안의 한켠에는 죽은 자가 빠져나가는 문이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그 문을 빠져나가 한켠에 안치된 후 장례를 치르는 방식이다. 이 마을의 중심에는 작은 돌무덤 서낭당이 있었다. 할머니들이 손주를 업고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소원은 무엇일까. 이곳 할머니들은 아직도 혼이 빠져나가는 것이 두려워 사진 찍는 걸 피한다. 그 할머니 세대는 분명히 모계사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을 빠져나오면서 만나는 공사현장에는 남자들이 부지런히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제 그들에게는 축적할 수 있는 수익이 생기고 있다. 이곳의 여행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자들도 생겨나고, 이런 구조는 권력과 손을 댈 수 있는 남성중심으로 갈 것이다. 반면에 여행자들은 모계사회의 신비가 보고 싶어서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가장 큰 자산인 모계사회의 형태를 버리지 못할 것이다. 모계사회가 없다면 루구후가 그렇게 주목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자는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 현대 사회 가족구조의 미래가 루구후 같은 모계사회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말했다. 여성의 사회적 능력 향상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날로 치솟아 가는 자본축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모계사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루구후는 분명히 변해가고 있었다. 다른 여행자가 여주인의 남편으로 보이는 이가 아침 일찍 출근 복장으로 나섰다든가, 여주인 남동생의 모습에서 자신이 주인되는 가정을 갖고 싶다는 의지 등을 읽었다든가 하는 게 그런 단초일 수 있다. 사실 여행자들에게 보여지는 루구후는 이미 박제화되어 있는 것이다. 신비를 보러가려는 순간 이미 그 신비는 구경꾼으로 인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도시가 오히려 서서히 모계사회로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미 자본주의화된 지구가 또 다른 가족의 사이클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 ||||||||||||||||||||||||
2004/09/20 오전 10: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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