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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드림3 - 중국진출 1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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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창완 댓글 0건 조회 1,302회 작성일 04-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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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드림, 환상으로 그칠 것인가
[특별진단] 차이나드림(3) - 중국진출 10년 +∝

“내가 처음 중국에 올 때는 직항로가 없어서 배를 타고, 항구에 내린 다음 시내까지 2시간 넘게 차를 타고 왔습니다. 때로는 김치가 먹고 싶어서 먼지 풀풀나는 도로로 한 시간이나 차를 타고 가서 김치를 먹고 오곤 했습니다”(톈진 진남개발구 한 기업 사장)

“92년 수교 이후에 정부에서 합작공단을 만든다고 방문단이 왔습니다. 그들이 처음 본 것이 바닷가 부근 한 개발구입니다. 톈진정부는 이들에게 간척지에 개발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지요. 우리가 나서서 막았어요. 그곳에 공장을 세우기 위해서는 수십 미터의 철심을 박는 기초공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방문단은 그곳을 한국기업 집중 투자지역으로 정했습니다. 지금 그곳은 공장 하나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불모지가 됐습니다”(톈진 초기 진출기업 총경리)

“투자 금액이 1000만 달러만 넘으면 정부가 나서서 특별한 접대를 해줍니다.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지요. 하지만 이후에는 서서히 시나 구정부에 끌려다니기 시작합니다. 기업의 기반이 약해지거나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 되면 강하게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이미 투자는 끝났는데”(베이징 임모 씨. 파산한 대기업의 전 간부)

중국과 미국의 관계 정상화 이후 긴밀해진 한중관계는 1992년 8월 24일 새로운 장을 열었다.

대만과의 단교라는 과정이 있기는 했지만 1990년 10월 KOTRA와 중국국제상회간 대표부 개설에 관한 협의서가 나눠지고, 그해 11월 KOTRA 대표부 창설팀이 도착하면서 양국관계는 급진전됐기 때문이다.

국교정상화 이후 노재현, 황병태, 정종욱, 권병현, 홍순영, 김하중 등으로 이어진 대사라인은 대중외교의 위상을 말해준다. 물론 정치적인 교류에 앞서서 두 나라간에 경제적인 물고가 트이기 시작했다.

그 선봉은 인천항과 웨이하이(威海)를 잇는 배편이었다. 산둥반도 끝에 위치한 웨이하이항은 이제 붕괴의 위기에 있는 보따리 무역상들에게는 전설과도 같은 곳이다. 얼마까지만 해도 보따리 상인들이 몰리던 이곳은 현저히 줄어드는 보따리상과 한국 투자기업의 위축으로 곤란을 겪는 지역이다.

웨이하이항에는 여전히 한국상품을 판매하는 한국상품전문매장이 있고, 위해의 주 수출품목인 진주나 농산물 시장이 열리고 있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축되어 있다. 웨이하이 한국상회 김석환 사무국장은 “보따리상의 급속한 위축과 중국의 투자환경 변화로 인해 투자기업의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호소한다.

변화를 요구받는 투자 한중간의 교류는 그간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88년 3억7만달러에 불과하던 대중수출은 올해는 9월까지 137억 달러에 달했다.

대중수입도 88년 13억8000만 달러 가량에서 빠르게 늘어 올해는 9월까지 96억 달러에 달할 만큼 성장했다. 중국에 대한 투자도 급증했다. 하지만 강산도 변한다는 10년간의 변화도 엄청나다.

90년대 대중 투자기업의 일순위는 국내에서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화섬산업 등이나 인건비가 생산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산업이 주축이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중국 내부의 변화와 맞물려 급속히 변화했다. 우선 LG, 대우 등 대규모 전자기업들이 빠르게 중국에 진출했다. 대기업의 진출과 더불어 하청업체들도 빠르게 중국으로 넘어 들어왔다.

대 중국 투자는 초반부터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것이 중국통들의 평가다. 우선 가장 큰 실책은 소비시장과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조선족 동포의 인력자원이 풍부한 동북3성을 투자지역으로 선호한 것도 패착의 하나로 꼽힌다.

오류를 거듭한 끝에 투자기업들은 점차 특성화되기 시작했다. 따리엔의 경우 기반을 잡은 일본투자기업의 기반이 강했지만 전통적인 육성산업인 섬유산업 등에 빠르게 진출했다. 톈진의 경우 전자나 전기, 이동통신 등의 대기업과 하청업체들이 빠르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반면에 산둥반도 끝에 자리한 옌타이(烟台)나 웨이하이, 칭다오(靑島), 웨이방 지역은 섬유, 피혁, 가방, 완구, 식료품 등 소비제 분야와 가전 분야의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몰렸다. 상하이나 수저우, 우시 등에는 소비시장을 노린 가전기업과 섬유, 피혁과 기계공업이 집중적으로 모였다.

광저우, 선전, 둥관, 주하이 등 광둥지역에는 초기에 대기업의 생산거점이 된 곳이다. 전자 분야는 물론이고 섬유, 컴퓨터 부품, 완구 등의 업체가 집중적으로 생겼다. 대부분의 기업체들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중국에 진출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투자환경이 급변하면서 투자의 다각화가 시급하다. 빠르게 상승하는 인건비와 사회보장비 등에 대한 부담으로 중국요소가 갈수록 퇴색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국기업들에게는 재료가격으로 납품가를 제시하는 중국기업에 맞서면서 하청을 따내는 일이 갈수록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건비 요소 등을 노리고 들어오는 기업은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것이 현지 분위기다.

대중국 투자 위축될까 최근 한국과 중국간의 무역 흐름은 그다지 좋지 않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올 양국간의 무역량은 거의 제로성장에 머물 전망이다. 9월까지 수출의 경우 3% 성장했고, 중국이 8% 가까운 성장을 거듭하고, WTO가입, 올림픽 개최 등 호재가 겹친 상황에서도 무역량이 전년과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늘파동, 납꽃게 등 적지 않은 파장이 있었지만 양국간의 무역 정체는 더 이상 양국의 교류부분이 많지 않다는 부정적인 추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또 대중국 투자도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올 상반기 중국투자는 3억6900만 달러(414건)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1%(금액기준)가 증가한 수준에 멈췄다.

전반적인 해외투자 둔화 가운데서도 드물게 성장한 축이지만 수십%대씩 증가하는 다른 국가들의 움직임에 비하면 극히 미흡할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철수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대중국 경제활동은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거기에 남아서 활동하는 기업들 역시 대부분은 수지를 맞추지 못해 고전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차이나 드림’은 언론이 부르짖는 환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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