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네이멍구 탐사2 ] 몽고의 중원 커스커텅과 타리뤄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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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창완 댓글 0건 조회 2,496회 작성일 07-03-18 22:1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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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하는 여행의 맛은 이제 없다. 고독 대신에 왁자지껄함과 대화가 있다. 창권형을 제외하고는 나이 차가 10살 가까이 나는 후배들이다. 이제 근 열흘동안 이들에게 중국을 보여주면 좋고, 자기 스스로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면 더욱 좋고, 세상을 볼 수 있는 단초라도 보여줄 수 있다면 내 역할은 분명히 성공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네이멍구 중원에 위치한 꿍커얼(貢格樂)지역이다. 커스커텅(克什克騰)을 중심으로 펼쳐진 꿍커얼 지역의 초원에 대한 호기심이 유달리 컸던 것은 초원의 중앙에 새들의 낙원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타리후(達里湖)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청명한 하늘빛이 인상적인 통랴오에 우리 일행이 도착한 것은 기차가 떠난지 20분 남짓한 뒤였다. 꼭 타보고 싶은 기차였지만 이번에는 인연이 없었다. 통랴오에서 네이멍구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기차는 오전 11시 35분에 딱 한 차례 있다. 이 기차는 때로는 수백킬로미터에 달하는 직선 기차길로 네이멍구를 관통하는 열차다. 직선으로 난 길이라지만 인적이 드물어 관리가 소홀해서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그 열차를 탈 경우 커스커텅의 중심부로 쉽사리 들어갈 수 있다. 그 기차를 놓쳤다가 커스커텅에서 하루를 쉬어갈 수 없다. 식사와 휴식을 마치고 그날 밤에 있는 네이멍구 남부 도시 츠펑(赤峰)으로 향하는 기차를 탄다. 끝없는 초원 멀리로 따싱안링의 산맥들이 간간히 눈에 띤다. 낙조가 휜히 보이는 입석기차에서 처음으로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의 정치관을 물어봤다. 부모나 친구들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생각속에 자신의 판단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몇 가지의 사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지만 그들을 설득해서 내 방향으로 끌어가는 것의 부작용을 알기에 그저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것으로 만족한다.
바로 커스커텅을 향하지 않고, 린시(林西)를 거친 차는 이제 본격적으로 네이멍구 중부 초원의 위용을 보이기 시작한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그 중간을 가로지르는 양이나 말떼, 혹은 소떼들. 후허하오터에서 만나던 작은 초원이 아니라 대륙의 평온이 느껴지는 진짜 초원이다. 더욱이 고도가 올라가면서 펼쳐지는 초원의 다양한 풍경은 일행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것 같다. 가끔씩 양떼에 눈을 돌릴 뿐 그들은 마치 샤먼이나 된 듯 자신을 초원에 던진다. 우리가 머물 숙소인 바이인아오파오(白音敖包) 지역에 도착한 것은 이미 서서히 해가 질 무렵이다. 엉뚱한 시멘트 집에 우리를 재우려는 기사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된 몽고파오(蒙古包)를 찾도록 하고, 한참을 이동한 후에야 우리는 겨우 대형 몽고파오에 잠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여장을 풀고 식사를 했다. 양을 주 메뉴로 만든 식단임에도 일행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식탁을 비워간다. 거기에 술에 관한 한 뒤지지 않는 일행은 입에 대보지도 않았던 바이주를 연거푸 마시자 몽고인들도 흥에 겨워 예정이 없었던 환영행사를 벌여준다. 하지만 밖에는 여전히 촉촉히 비가 내려 더 이상 흥을 내기에는 무리다. 꿈에 벌판을 달려보고 싶지만 불을 따라 들어온 온갖 나방과 벌레들로 대부분은 잠을 설쳐야 했다. 초원의 아침은 역시 청신하다. 일찍 잠에서 깨어 세계적으로 드물게 초원지대에 형성됐다는 삼나무 군락을 살펴본다. 그 군락으로 가는 길에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에서 보이는 것처럼 쓸쓸히 죽어 있는 나무를 만난다. 자신의 뿌리에 있는 흙마저도 몰아가버린 바람의 비정 때문에 나무는 말라 죽었다. 사실 우리들은 지금 소비라는 바람을 통해 지구의 뿌리마저 위협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 소비의 바람은 우리는 물론이고 이제 중국을 광풍처럼 휩쓸고 있다. 타리뤄얼후까지 둘러보고 다시 츠펑에 가기에는 시간이 급하다. 급히 서둘러서 아침을 챙기고, 다시 차를 탄다. 씨린하오터(錫林好特)로 가는 길목에 있는 타리후에 도착했다. 드넓은 초원, 또 1200미터의 고도에 만들어진 호수의 모습은 잿빛이다. 영(靈)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한번쯤 들렀다 가고픈 곳 같다. 드물게 새들이 날아 멀리서 온 객을 맞아준다.
다시 왔던 길을 돌려 츠펑으로 향한다. 츠펑에서 밤새 달려서 톈진까지 오는 침대버스에 몸을 싣는다. 일행중에 한 여학생은 심한 요동 때문에 잠자는 중간에 침대가 무너져 일층으로 오는 소동까지 벌어지지만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이런 일이 없으면 추억도 없다는 듯한 표정에서 그들의 새로운 낙관을 볼 수 있다. 그들은 타이산(太山) 일출의 장경과 이미 도를 잃어버린 공자 후손들의 바가지가 인상적인 취푸를 구경하고 마지막으로는 칭둥링(淸東陵)을 봤다. 만주족의 유산이기에 천대받고 있지만 빼어난 예술성과 지세가 인상적인 그곳에 대한 인상 때문에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더욱 시끄럽게 했다. 그리고 한 후배가 마지막에 이런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중국은 최고는 될 수 없지만 최대는 될 수 있는 나랍니다. 반면에 한국은 최대는 될 수 없지만 최고는 될 수 있는 나라입니다.” 나도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는 바였기에 더욱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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