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화기행 5] 지아장커 감독 <플랫폼>과 산시 핑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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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창완 댓글 0건 조회 4,433회 작성일 07-03-18 22:26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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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긴 플랫폼에서 긴 긴 기다림, 긴 긴 열차라지만 내 긴 긴 사랑을 가져갈 수 없네." 서부의 황량함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들을 보지 않으면 삶을 이야기할 수 없다. 늦가을이 지난 시간 베이징에서 조금만 서쪽으로 가면 세상은 온통 황토빛으로 바뀐다. 그리고 산시성[山西省]이 나온다. 간간히 있는 탄광만이 가장 활력이 있는 이 황막한 땅은 여행자들에게 뭔가 신비한 느낌을 준다. 그 산시성은 외줄기에 가까운 철로가 지난다. 따통[大同]에서 시작되어, 하나둘 탄광을 지나고, 산시성의 성회 타이위앤[太原]을 지난 열차는 핑야오[平遙], 린펀[臨汾]을 지나 남방으로 향한다. 이 길을 기차로 지나다보면 황막이라는 단어 외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하지만 이건 여행자의 몫이다.
2000년작 영화 <플랫폼(站臺)>의 주된 배경은 산시성 핑야오[平遙], 펀양[汾陽], 원수이[文水] 등이다. 앞서 말한 황막함이 가득한 서부의 풍경을 대부분 늦가을과 겨울 즈음에 담아갔다. 생명력의 감동이라고 느낄 수 없는 이곳에서 감독은 무엇을 담고 싶었을까. 출구 없는 청년들의 절규 영화의 제목이나 주된 소재로 사용된, 앞서 말한 유행가처럼 이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떠남이다. 대학 입학을 통해서나 다른 방식을 통해서 떠나지 못하면 그 초라함의 일부가 되어야 하기에 그들은 경기들린 것처럼 출구를 희망하고, 그들의 옆으로 기차가 지나갈 때면 그들은 간절한 눈으로 그 기차를 바라본다. 타이위앤에서 북쪽이 아닌 동쪽을 향한다면 대여섯 시간이면 그들의 수도 베이징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혁개방 초기라지만 베이징은 그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신비한 땅이다. 당시의 후코우[戶口] 제도는 지금보다 더 엄격히 허가 밖 지역에 가면 밥은 물론이고 땔감 등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던 시간이다. 이곳에 살아가는 한 청년 추이밍량(崔明亮 왕홍웨이 분)은 스스로 지식 노동자라고 자처하는 문공단(文工團 우리 식으로 보면 문화선봉대 격) 소속의 전형적인 룸펜이다. 벌써 인생의 권태를 아는 것처럼 겉늙은 그에게 열정이 있다면 같은 문공단에 있는 윈루이쥔(尹瑞娟 짜오타오 분)에 대한 애정 정도다. 하지만 루이쥔의 아버지는 그들이 사귀는 것을 반대한다. 볼 것 없는 룸펜에게 딸 주는 것을 좋아할 리 없는 것은 부모들의 당연지사다. 그들 나이답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영화관에서 <유랑자>를 보는 등 시도를 하지만 루이쥔의 아버지가 보무도 당당하게 딸을 호출함으로써 그들의 사귐은 항상 위태롭다. 때문에 그들은 무너질 듯한 성벽의 한 귀퉁이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지만 그들에게는 서로를 위해 보여줄 어떤 열정을 갖기 힘들다. 그나마 출구가 있다면 그들의 직업이 낡은 화물차와 시외버스에 의탁해 이곳저곳을 방황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밖이야 나름대로 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안쪽에서 보면 벽돌조차 거의 무너져 내려 쇠락한 모습이 역력하다. 수년 전부터 많은 공을 들여 다시 복원하는 부분도 있지만 복원 자체가 그 색깔을 퇴색시킬까 두려운 곳이다. 하지만 위치우위가 탄성을 질렀듯 이 막막한 성은 사실 신비함 그 자체다. 이곳에서 청 말에 중국 은행업의 시초가 된 표호(票號)가 탄생했다. 물론 표호 이전에는 장거리 중요 물건의 운송을 담당하던 보디가드 집단인 표국(票國)이 있던 곳이다. 때문에 이곳은 청 말부터 중국 전역에서 가장 부유한 자들이 살던 곳으로 고성 안에 있는 고가(古家)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물론 이곳의 화양연화는 이곳 출신으로 국민당의 재정부장을 지낸 콩상시까지였다. 돈이 가장 더러운 물건으로 치부되던 문화대혁명 시대에 이곳의 표호와 부호들의 집은 홍위병들의 타도 대상 1호였다. 다행히 불타지는 않아서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지금은 중국에서 가장 보존이 완벽한 성곽을 갖고 있다. 타의에 끌려 다니는 80년대식 삶
그러는 가운데 음악의 장르도 서서히 개혁개방의 파고를 탄다. 그들의 마음이 따라갈 수 없는 시간에 서구의 음악들은 쏟아지고, 그속에서 개방도시 선전[深圳]의 물까지 먹고 온 장쥔(張軍)으로 인해 밍량 역시 기타의 세계에 빠져든다. 이런 방황의 중간에 루이쥔의 아버지가 병이 들자, 어쩔 수 없이 그들은 떨어지게 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게'(Out of sight, out of mind) 사람 사이의 이치고, 밍량과 루이쥔의 관계도 부지불식간에 멀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을 접점으로 이끌 무엇이 하나도 없다. 영화의 중후반은 그들의 헤매는 길이다. 주섬주섬 시간을 먹는 길들 위에서 그들은 가끔 기차를 만나면 미칠 듯이 철길로 달려가 기차의 뒷모습을 보고 난 후 허탈하게 그들의 길을 재촉할 뿐이다. 어찌 보면 우리 영화 <서편제>를 닮은 구석이 많은 영화다. 길 위에서 허무와 삶과 설익은 예술이 춤추는 것이 그렇다. '진도 아리랑'을 부르는 남도의 부드러운 언덕 대신에, 급조된 천막에서 미칠 듯이 기타를 치는 밍량의 모습과 차이가 있지만 그들은 허허한 시대를 보내는 방식, 아니 넘어가는 방식이 비슷하다. 어느덧 밍량 역시 담배를 꼬나물 줄 아는 당돌한 처자와 맞선을 보고, 결혼을 한다. 아이를 업은 아내가 부엌에서 서성이고, 밍량은 소파에서 불안한 자세로 잠을 자고 있다. 그들이 과거에 떠나고 싶던 기차의 기적 대신에, 물이 다 끓었다는 것을 알리는 주전자의 기적만이 시끄러운 평온한 오후를 보내는 밍량은 아마 꿈 속에서 그가 그렸던 루이쥔과 베이징행 기차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멀리서 기차의 도착 기적이 들리는 플랫폼에서의 기다림을 꿈꾸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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