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균의 늦바람 중국여행 -서안행 야간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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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781회 작성일 08-05-30 17:01본문
1. 서안행 야간열차
중국 여행 두 번째 날인 6월 8일 밤 저는 서안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왜냐고요? 한번쯤은 침대칸에서 밤기차를 타 보고 싶었으니까요. 북경에서 서안까지 기차로 12시간 정도 걸리는데 낮에 타면 하루가 그냥 날아가잖아요. 그리고 밤에 타서 다음날 아침에 떨어지면 하룻밤 호텔 비를 절약할 수 있으니까 일거양득이죠. 제가 탄 탄 Z19 열차는 중간 정차를 하지 않는 가장 빠른 열차인데 침대칸 윗자리가 중국 돈 400위안입니다..
웬만한 4성급 호텔 하루 숙박비죠. 이걸 지불하면서 대낮에 기차를 타고 가면 시간 낭비에 돈 낭비 아깝지요. 그래서 밤기차를 탄 겁니다..
중국 기차는 중간에 얼마나 많은 역을 거쳐 가느냐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데 直接이라는 한자의 병음 알파벳 Z를 붙인 열차 (내가 탄 Z19처럼)가 제일 빠르고 그 다음이 영어 DIRECT의 머리글자를 딴 D, 그리고 특쾌(特快)열차에서 머리글을 딴 T,쾌속열차의 K 이런 알파벳 머리글자가 붙은 열차들이 빠르고 쾌적해요.
N자가 붙은 열차는 그야말로 완행인데 이거 탔다가는 아마 돌아 버릴 겁니다.. 1994년에 만화가 고우영씨가 18史略 만화를 그리기 위해 이런 열차를 타고 중국을 누볐어요. 존경할 만한 분입니다.
1980년부터 10여 년간 중국대륙을 기차로 여행한 미국 작가 폴 써로우의 <중국기행>에 보면 중국 열차는 더럽고 춥고 승무원들은 대체로 불친절하다고 되어 있는데, 천만에요! 중국철도는 장족의 발전을 했고 내가 탔던 Z19열차는 북경서역과 서안을 중간 정차 역 없이 바로 연결하는 열차라 아주 깨끗하고 쾌적했습니다. 17량의 객차가 모두 침대차였으니까요(물론 조금 좁았지만요).
6월 8일 금요일 저녁 8시30분경 천진에서 배웅 나온 제 친구와 함께 북경 서역 (북경에서 나가는 기차는 대부분 여기서 출발합니다) 대합실에 들어섰습니다. 중국인들은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에 공항에서 쓰는 수화물 탐색기를 설치해 놓고 있는데 이 탐색기 때문에 대합실 들어가기가 참 힘듭니다. 여러 사람이 가방과 짐을 들고 들어가니까 병목현상이 생기는 거죠. 만원버스처럼 사람들이 몰려 들어가니까 줄이 길게 그리고 늘어지고 느릿느릿 들어 갈 수밖에요. 거기다 짐을 또 모두 수화물 탐색기에 통과 시켜야 합니다. 배웅하러 가는 사람도 같이 들어 갈 수 있어서 배웅하는 사람을 가장한 소매치기들에겐 이처럼 좋은 일터가 없어요. 조금은 불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갑을 넣은 바지 주머니에 한손을 찔러 넣고 들어갔습니다. 지갑을 소매치기 당하는 불상사를 겪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이 탐색기는 사실 거의 시늉입니다. 그 후 15일간 여행하면서 버스터미널과 기차역마다 이런 탐색기에 짐을 통과시켰지만 내용물을 판독할 능력을 가진 직원은 하나도 없어 보였거든요. 영감님들과 아줌마들이 그냥 화면만 보고 있더군요.
중국의 큰 도시 기차역 대합실은 候車室이라고 하는데 공항처럼 구역이 나뉘어 있습니다. 제가 탄 북경 서역 발 서안 행 Z19열차는 는 5번 대합실 그러니까 5호 후차실에서 대기한 후 승차했는데 정확히 9시 24분에 예정대로 출발했습니다. (제 친구는 8시 반 쯤 천진으로 돌아가고) 이 아래 사진이 그 대합실 풍경입니다. 가슴이 뛰었죠.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으니까요
침대차는 한 칸에 4개의 침대가 양쪽에 이층으로 설치되어 있는데 전 8번 침대니까 2호방(정확히는 컴파트)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망령이
들었는지 8번 침대가 아니라 8호방으로 무거운 짐을 질질 끌고 사람들이 서 있는 좁은 통로를 <뚜이부치(미안합니다)>를 연발하면서 갔던 거죠.
이윽고 8호방, 위쪽침대라는 건 아니까 불문곡직 내 짐을 그 위층 침대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방 문 앞에 있던 중국 젊은이 왈 "아니 댁은 누군데 남의 침대에 짐을 올려 놓으슈?", " 이게 8번 침대 아닙니까?", " 아니올시다. 8호 방이요." "아! 그래요?"
쪽팔렸지만 결합은 분해의 역순이니까 중국 애들이 킬킬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짐을 끌고 좁은 통로를 지나 2번방으로 왔습니다. 참 길더군요.
내 8번 침대가 있는 컴파트에는 벌써 만하임에서 온 독일인 남녀가 아래 칸
두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고요. 이 사람들은 서안에 내려서 바로 계림으로 간다는데 그 노선이 어째 좀 헷갈렸습니다. 계림을 가는 데 왜 서안을 거쳐 가는지? 진짜 부부인지 아니면 불륜관계인지는 알 도리가 없고 거기다 영어 잘 못한다고 아예 미리부터 방어망을 두텁게 치더라고요. 전 이층침대로 올라갔고 (이게 올라가기가 아주 불편해요. 아래층 침대에 조그맣게 튀어 나와 있는 발판을 밟고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매우 거북하고 불편했어요. 이래서 침대차는 아래 칸을 사야 하는 겁니다) 10분 쯤 지나 들어 온 젊은 중국 애는 제 맞은 편 이층침대에 올라가더니만 노트북을 펴곤 아예 한마디도 안하고 컴퓨터만 두들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친구가 다음 날 아침까지 한 말은 두 마디도 안됐죠.
국적이 다른 사람들끼리 한 컴파트에서 수인사를 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기대했던 나에겐 조금은 까칠하고 삭막한 상황이었습니다. 뭐 이것도 나중엔 수시로 오르내리면서 밑에 있는 독일인 남녀와는 대충 친해졌지만 (중국애만 빼고). 사실 경험삼아 한번 타는 거지 이 침대차는 좁고 불편해요. 그리고 샤워를 못하니까 끈끈하고요. 물론 TV까지 설치되어 있지만 재미없기로 소문난 중국 TV를 누가 보겠습니까?
기차는 17량, 모두 4인실 침대차지만 8호차는 2인실이고(소파까지 있는) 그리고 9호차는 식당 겸 카페였어요.. 기차가 출발한 직후엔 식사보다 맥주를 팔더군요. 그 좁은 카페를 프랑스 효도 관광단이 잔뜩 자리를 차지하고는
프랑스어는 ‘프’자도 모르는 어린 중국 승무원에게서 맥주를 사마시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인들은 상대가 누구건 간에 무조건 프랑스어로 지껄이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였지만 별 문제 없어 보이더군요. 후진타오 이후의 중국을 논하는 게 아니라 청도 맥주 한 병에 얼마인지를 물어 보는 거였으니까요. 한 병에 15위안(이건 비싼 가격입니다) 저도 한 병 마셨죠. 청도 맥주가 다 떨어져서 하이네켄으로요.
기차는 중국 심양 철도 공작창에서 제작된 건데 깨끗했습니다.. 승무원들도 친절했고 승객들은 중국인들, 프랑스 효도 관광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그리고 사리를 둘러 쓴 인도 아줌마들 한 떼거리. 중국인들은 대체로 문을 열어 놓고 있고 인도인들은 주로 아래 칸 침대에 모여 있더군요..
전 17호까지 괜히 가보고 돌아 와서는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다가 잤습니다. 전에는 밤 10시면 기차 전체가 강제로 소등되었다고 하는데 이 기차는 컴파트 마다 자체적으로 불을 끌 수 있고 또 독서등도 달려 있어서 편했습니다.. 아무튼 중국여행 이틀째 날이 기차 속에서 저물어 간 거죠. 이 사진이 다음 날 도착한 서안역입니다.
다음엔 섬서성 박물관에 관해 말씀드릴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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