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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운의 북경일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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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민재 댓글 0건 조회 1,345회 작성일 04-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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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돌아나온 우리는 다시 신동안시장에서 모여 차로 향했다. 해가 지니 왕푸징 거리의 불빛들이 하나둘 휘황찬란해지기 시작했다. 버스에 오르고,,, 우리는 드디어 저녁을 먹기 위해 그 유명한 취엔쮜더(全聚德)의 본점으로 향했다.

나는 1995년 1월과 2월 두달 동안 서울 종로의 고려학원에서 박귀진선생으로부터 2달 동안 중국어를 배운 적이 있다. 박귀진, 가광위 커플은 중국어학원가에서 유명한 양반들이고, 이들이 후에 ‘차이나로(中國路) 중국어학원’을 설립하여 강남 등에 분점을 내었다. 외국어대 동시통역대학원 중국어과에 입학하는 학생의 거의 100%가 이곳 동시통역반을 거쳐나간다는 사실이 이 학원의 위치를 가늠하게 해준다. 어쩌다보니 나는 그때 중국어를 그저 글자 익히고 발음과 성조 흉내좀 내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만7년이 지나서 돌아온 탕아처럼 다시 이 학원을 찾아가 몇 달 동안 중국어를 배운 것이다. 주로 기초반을 담당했던 박귀진 선생은 세월의 흐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정정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지난 ‘95년에 중국어 걸음마를 배울 때 박귀진 선생이 해준 북경이야기, 그 중에서도 베이징카오야(北京烤鴨)에 관련된 잊혀지지 않는 스토리 때문이다.

박선생의 말에 의하면, 북경오리 중에서도 취엔쮜더가 제일 유명한데, 이곳은 1층은 내국인, 2층은 외국인을 맞이한다고 한다. 그런데 1층의 가격은 내국인을 위한 것이기에 훨씬 저렴하고, 2층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한층 비싸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에도 취엔쮜더의 분점이 생겼지만, 그 맛에 있어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이유인즉 북경 본점에서만 사용하는 향료 한가지가 빠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수로 향료를 넣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본점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그 향료의 노하우는 본점 이외의 분점에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박선생으로부터 그때 그런 말을 듣고 언젠가 북경에 가면 꼭 그곳을 가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한번도 오리구이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나는 과연 그 맛이 북경본점의 독보적인 맛인지 현재로서는 구분할 수 없는 셈이다. 또 아직도 그러한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취엔쮜더 뿐만 아니라 어느 곳이든 북경오리구이를 만들기 위한 과정은 오리의 사육부터가 잔인하다고 한다. 즉 육질이 좋은 오리를 골라 생후 2개월까지 강제로 사료를 먹여 살이 오르게 한 후, 운동량을 줄여 지방 함유율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잡는다고 한다. 그것도 하루에 8차례의 고문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오리의 몸을 부풀린 뒤, 그 형태 그대로 장작에 굽는 것이라니,,, 가히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화려한 취엔쮜더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과연 명성에 걸맞게 1층의 그 넓은 광장같은 자리는 꽉 차 있었다. 함풍(咸豊) 년간에 개업하여 동치(同治) 3년인 1864년에 개업했다는, 무려 150년의 역사를 지닌 음식점에 드디어 첫 발을 내디딘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박귀진 선생의 말이 맞는지 1층엔 온통 중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만 붐볐고, 우리는 2층으로 안내되었다. 오르는 도중에 1층 한쪽 구석의 코너에 10여마리의 오리가 구워져 틀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여느 치킨집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10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우리 일행은 나누어 앉았다. 화장실을 들러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손을 씻고 나니 세면대에 기다리고 있던 점원이 휴지를 건네준다. 황송할 따름이다. 중국의 화장실은 이처럼 극과 극을 달린다.

드디어 요리가 나왔다. 그런데 본 요리는 아닌 것 같았고, 잘 생각이 나진 않지만, 어쨌든 가볍게 시장끼를 달랠 수 있는 음식이 먼저 나왔다. 사실 우리는 아직 이때까지 서로 일행으로서의 ‘일치감’ 같은 것을 갖고 있지 못했다. 정선생은 이미 나와 편안히 얘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친해져있었는데, 그는 성격이 진솔하고 열정적이며 유머러스했다. 그의 시기적절한 제안으로 우리는 드디어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 테이블의 여행객들은 모두 서울 주변의 수도권에 사는 분들이 많았다. 나 자신이 김포인데다, 정선생은 산본, 이혜영 선생은 평촌, 정연섭 선생 부부는 시흥, 손수일 선생은 광명, 김희수 선생은 분당, 그리고 비행기 옆좌석에 앉았던 전순덕 선생은,,, 음...갑자기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 외에 서울 방배동에 사는 이종애 선생, 그리고 멀리 충주에서 올라온 김남주 선생 등이 처음 인사를 나눈 우리 일행이었다. 일단 빼갈(白酒, 고량주)을 한병 시켜 서로 술을 한잔씩 돌리니 분위기는 어느덧 화기애애해졌다.

점점 배가 고파진 우리는 자꾸 주위를 둘러보며 이제나저제나 오리구이가 나오길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 이윽고 종업원이 크고 먹음직스러운 오리 한 마리를 통째로 카트에 싣고 옆에 와서 섰다. 이미 오리구이를 싸서 먹을 소스나 밀쌈 등을 테이블에 차려놓은 후였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보았다. 닭고기와는 어떻게 틀릴까, 과연 그렇게 고소할까, 간은 어떨까... 등등... 하긴 배가 몹시 고팠으므로 뭔들 안 맛있겠는가.. 종업원이 고기를 칼로 껍질부터 속살까지 편편히 떠내어 접시에 담자, 푸우위엔 아가씨가 다가와 시범삼아 어떻게 먹는 것인가를 가르쳐준다. 방법은 간단했다. 희고 넓은 밀쌈에 오리의 껍질과 속살을 적당히 올려놓은 다음, 여기에 야채와 소스를 넣고 요령껏 접는다. 그런 다음 손으로 잡고 조금씩 깨물어 먹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먹는 것은 사실 오리고기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게 한다. 답답해진 나는 그냥 고기를 소스에 찍어먹었다. 껍질부분은 맛이 좀 찝찝했으나, 속살은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하지만 기대가 워낙 커서 그랬는지, 그다지 감칠 맛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토록 벼러왔던 취엔쮜더를 먹어보았으니,, 그 자체로도 오늘 저녁은 몹시 흡족했다. 식사를 마친 후 밖으로 나가니 전광판에는 큰 글씨로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모두 모이면 당연히 취엔쮜더로(全聚時刻 當然來全聚德 )’... ‘취엔찌(全聚)’의 뜻이 ‘모두 모인다’는 뜻이므로, 재치있는 문구라 하겠다.

흡족해진 우리 일행은 밖으로 나와 치엔먼(前門) 즉, 정양문(正陽門) 쪽을 향해 걸었다. 우리 버스는 치엔먼의 좌측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술한잔 한데다가 이국 도시의 밤풍경에 몹시 흥겨워졌다. 더군다나 치엔먼과 그 앞의 지엔러우(箭樓)는 각각 휘황찬란한 전등으로 장식되어 황성의 규모를 과시하는 듯 했다. 시간은 거의 9시가 다 되어갔고, 우리는 정양문 남쪽으로 20분 정도 버스를 더 타고 가서야 숙소인 중청쟈르주디엔(中成暇日酒店, Holiday Inn)에 도착했다. 호텔은 4성급이었지만, 지은지 얼마 안 되어 매우 깨끗했고, 조선생의 말에 의하면 거의 5성급 수준이라고 한다. 정연조 선생과 나는 한 방을 쓰게 되어 344호로 올라갔는데, 과연 내부 시설도 깔끔했다. 욕조를 없애고 대신 샤워부스를 설치한 욕실도 나로서는 더 마음에 들었다.

오늘 일정은 사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박현숙 선생과 조선생의 안내로 우린 라오와이(老外), 즉 외국인들이 밤에 잘 찾는다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태원같은 화려한 밤거리를 보기로 하였다. 그 거리 이름은 바로 산리툰(?)....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우리 방으로 연락전화가 오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우리는 정선생과 나, 둘만 소식전달을 제대로 듣지 못했음을 알았다. 허나 어쩌랴,,, 이미 10여명은 길을 떠난 후였고, 술이 조금 오른 나와 정선생은 못내 아쉬워 나는 이곳 칭화대학에 있는 후배에게, 그리고 정선생은 박선생과 조선생에게 연신 응답없는 다이얼을 돌렸다. 그러나 전화도 그날따라 우리 편이 아니었다. 어쩌겠는가... 결국 중요한 취재 소스를 놓치긴 했지만, 그런 이유로 다음의 북경행은 보다 더 풍요하겠지 여길 밖에.... 나는 적적한 마음에 가져간 노트북을 열고 하루의 일정을 정리해보았다. 중국에 오면 매일밤 술마시느라 마음만 먹고 한번도 하지 못했던 것을,,, 이런 失機를 이용해 기특하게도 한번 해보는 것이다...^^ 산다는 건,,, 때로는 마음먹기에 따라 잃으면 얻고, 버리면 채워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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