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균의 늦바람 중국여행 -청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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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35회 작성일 08-05-30 17:05본문
오늘은 중국 최초의 이슬람교 사원인 청진사 이야기를 합니다. 대안탑에서 난초 같던
가이드 주정씨와 헤어지고 나오니까 피곤했습니다(기차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새벽 5시30분부터 설쳐댔으니 그럴 만도 하죠) 이럴 땐 호텔로 직행! 샤워하고 쉬는 거죠. 혼자 다니는 여행이 이래서 좋은 거라고요. 패키지로 몰려다니면 일정 때문에 피곤해도 쉬질 못해요. 쓸 데 없이 쇼핑센터나 끌려 다니니까 짜증만 나죠.
한 시간 반 쯤 쉬고 택시타고 청진사로 갔습니다. 청진사는 서안시내 북쪽 회민, 그러니까 중국이슬람교 신자들이 모여 사는 거리에 있는데(이 회민 거리가 끝내줍니다. 다음에 이야기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별로 안 오고 미국이나 유럽 관광객들 아니면 저같은 나홀로 족이나 오는 곳이라 조용하고 편안한 곳입니다. 입장료는 25위안. 사이트는 www.xaqzds.com 시장을 통해 들어가는 데 입구에 있는 장식 벽과 명나라 영락제인가 가정제인가 하는 황제가 세워 준 나무 문 목패 방이 고색창연했습니다.
淸眞이라는 말은 중국에서 이슬람교를 가리키는 말인데 보통 회족의 종교라 해서 이슬람교를 회교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존경의 뜻을 담은 높임말입니다. 깨끗하고 참된 종교라는 뜻인데 중국 전역, 특히 서북쪽에 많이 있는 이슬람교 사원은 다 청진사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난주 청진사, 서녕 청진사 이런 이름인데 이 서안의 청진사는 최초의 이슬람 사원이라 청진대사라고도 합니다. 말하자면 형님 절인 셈이죠. 회교사원이라고 해서 중동의 모스크를 연상하면 안되고 그냥 중국 절과 모양이 비슷합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중국 절이 궁궐처럼 남북으로 건물 배치가 되어 있는 데 비해 이 청진사는 아라비아의 메카가 있는 방향을 기점으로 동서로 건물 배치가 되어 있는 게 특징입니다. 하긴 세계 어디서나 무슬림 사원은 다 그 중심부 제단( 키볼라라고 하죠)을 메카 방향에 두고 있어요.
(우리 서울 이태원의 회교 사원은 그 제단이 서쪽에 있습니다. 터어키의 불루 모스크의
제단은 동쪽에 있고요).
이 청진사는 서기 742년 당나라 현종 때 세워졌다고 합니다. 양귀비랑 연애하면서도 이국 종교인 이슬람교 사원을 세울 정도로 멋진 황제였는데 이 때 쯤은 아마 슬슬 맛이 가기 시작해서 정치는 대신들에게 맡기고 한참 술과 양귀비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였을 겁니다.
명나라 목패방을 지나 들어가면 성심전이며 봉황정 같은 정자와 건물, 그리고 강희제,
도광제 등 역대 황제들이 내린 비석들, 건륭제가 세운 문들이 서 있습니다. 청진사는
당나라 때 세워졌지만 송, 원, 명, 청 역대 왕조를 거치면서 중건과 수리를 반복해서 당나라 때 건물은 없어요. 역사가 천 3백년이나 되는데 목조 건물이 남아나겠습니까? 그리고 양 옆의 작은 방에는 명나라와 청나라 때 골동품 가구들도 많이 있었어요. 역대 아홍(회교 사원 주지) 들 중에 가구 장사를 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아주 진귀한 것들이었죠. 모두
자단목이며 티크였으니까요. 탐나더군요.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니까 명나라, 청나라 황제들의 비석은 사원 경내에 세워져 있는 데 이상하게 현종 때 세운 창건비는 골방 한 쪽에 대충 세워져 있더라고요. 복제품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비석이 작아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그 창건비 옆에서 재미있는 비석을 하나 봤죠. 이겁니다.
. 청관석이라는 글자가 보이죠? 이게 재미있는 데 당나라와 송나라 때까지 과거시험을
보는 사람이나 관리가 되고 싶은 사람, 그리고 관리인데 승진하고 싶은 사람은 이 비석에다 기도드리고 못을 박아봤대요. 그래서 못이 들어가면 합격, 임용, 승진이 된다는 겁니다. 비석 가운데 못이 박힌 게 몇 개 보일 겁니다. 안 박히면요? 그야 불합격, 누락이죠 뭐.
재미있더군요. 모르긴 몰라도 이 비석가지고 시주 돈 꽤나 울궈먹었을 겁니다.
이 청진사에는 아까 말한 명나라 때 목패방 (보통 차이나타운 앞에 서 있는 패루입니다)외에도 이슬람 달력을 아라비아 문자로 새겨 넣은 월비(月碑)가 유명해요. 그래서 그걸 보려고 갔더니만 장롱 같은 데다 집어넣곤 자물쇠로 잠가 놨어요. 이슬람 사원이니까 아라비아 문자가 새겨진 비석은 좀 있지만 이 월비는 당나라 때 만들어 진 진짜거든요. 속상했죠.
그래서 그 비석 근처에 있는 간이 목욕탕(이슬람교 사원은 신자들이 기도하기 전에 손발과 몸을 씻어야 하기 때문에 사원 안에 이런 간이 목욕탕이나 세면장이 반드시 있습니다) 앞에 있는 회민 영감님들에게 뭘 좀 물어 보려고 급히 갔는데 이런 절 본 터키 아줌마 한 떼거리가 그 목욕탕 건물이 이 들어가도 되는 곳인 줄 알고 용감하게 따라 들어 온 겁니다.
한자를 모르는데다 영어 안내도 없고 관광객 행색인 제가 들어가려고 하니까 무작정 들어 온 거죠. 스카프를 두른 터키 아줌마들 열 댓 명이 목욕탕으로 쳐들어오자 그 앞에 앉아 졸고 있던 회민 영감님들 혼비백산했어요. 가이드가 뛰어 오고 아홍(주지)이 소리치고 중국
보통화와 섬서성 방언, 회민들의 이상한 아랍어, 그리고 아줌마들의 터키어가 난무하고
손사래와 놀란 표정이 교차하면서 사태는 겨우 수습되었지만 본의 아닌 원인 제공자였던 전 한 쪽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어요(살람 알레이쿰! 수고하셨습니다).
결국 알고 보니까 그 월비는 훼손을 막기 위해 잠가 놓았고 높은 사람이 오거나 회교도들의 기념일에만 열어서 공개한대요. 그 난리를 피운 것에 비하면 너무나 뻔한 대답.
알았다----! 그러면 본당이나 보자하고 발길을 옮겼습니다. 본당은 청진사의 제일 안 쪽 그러니까 서쪽 끝에 있습니다. 여기 회민들은 예배대전이라고 하는 데 절로 치면 대웅전이죠.
하지만 우상숭배를 금하는 이슬람교 본당이라 대전 안은 아무 것도 없고 그냥 넓은 마루입니다. 제가 애독하는 책 <중국 100배 즐기기>에 의하면 천 명이 앉아 예배를 볼 수 있다고합니다만 그 날은 한산했어요. 시주함만 덩그러니 있더군요. 1위안짜리 몇 장 넣고 절 한 번 한 다음 나오면서 대전 현판 사진을 찍었습니다.
서안 청진사의 아라비아 어 현판. 현판내용은 <알라는 유일신이다>라는 뜻입니다.
이슬람력 1365년이니까 622년을 더해서 1987년 정도에 만든 현판이지. 만든 사람은 馬
아무개라는 중국 이슬람교 회장. 중국 이슬람교 신자들, 즉 회민 들 중 많은 사람들이
馬씨입니다. 아랍 이름 마호멧(이슬람교 창시자 이름이기도 하죠)에서 유래한 성씨가 분명합니다. 이 회민들은 당나라 때 중국에 온 아랍인의 후손입니다. 우리 신라 때 처용의 사촌들이죠. 이젠 중국화해서 아랍인의 흔적은 별로 찾아 볼 수 없지만 이 사람들 고생 많이 했어요. 청나라 때는 엄청 박해를 받아서 반란도 두 번인가 화끈하게 일으켰는데 중일 전쟁 때는 일본 놈들 때려잡는 선봉이었습니다. 이 청진사는 쓸 데 없이 바쁘기 마련인 관광객인 제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 곳입니다. 그리고 회민들의 슬픈 역사를 알고 가면 좀 숙연한 기분도 드는 곳이죠. 이 청진사 옆이 회민거리니까 다음엔 회민들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가이드 주정씨와 헤어지고 나오니까 피곤했습니다(기차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새벽 5시30분부터 설쳐댔으니 그럴 만도 하죠) 이럴 땐 호텔로 직행! 샤워하고 쉬는 거죠. 혼자 다니는 여행이 이래서 좋은 거라고요. 패키지로 몰려다니면 일정 때문에 피곤해도 쉬질 못해요. 쓸 데 없이 쇼핑센터나 끌려 다니니까 짜증만 나죠.
한 시간 반 쯤 쉬고 택시타고 청진사로 갔습니다. 청진사는 서안시내 북쪽 회민, 그러니까 중국이슬람교 신자들이 모여 사는 거리에 있는데(이 회민 거리가 끝내줍니다. 다음에 이야기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별로 안 오고 미국이나 유럽 관광객들 아니면 저같은 나홀로 족이나 오는 곳이라 조용하고 편안한 곳입니다. 입장료는 25위안. 사이트는 www.xaqzds.com 시장을 통해 들어가는 데 입구에 있는 장식 벽과 명나라 영락제인가 가정제인가 하는 황제가 세워 준 나무 문 목패 방이 고색창연했습니다.
淸眞이라는 말은 중국에서 이슬람교를 가리키는 말인데 보통 회족의 종교라 해서 이슬람교를 회교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존경의 뜻을 담은 높임말입니다. 깨끗하고 참된 종교라는 뜻인데 중국 전역, 특히 서북쪽에 많이 있는 이슬람교 사원은 다 청진사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난주 청진사, 서녕 청진사 이런 이름인데 이 서안의 청진사는 최초의 이슬람 사원이라 청진대사라고도 합니다. 말하자면 형님 절인 셈이죠. 회교사원이라고 해서 중동의 모스크를 연상하면 안되고 그냥 중국 절과 모양이 비슷합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중국 절이 궁궐처럼 남북으로 건물 배치가 되어 있는 데 비해 이 청진사는 아라비아의 메카가 있는 방향을 기점으로 동서로 건물 배치가 되어 있는 게 특징입니다. 하긴 세계 어디서나 무슬림 사원은 다 그 중심부 제단( 키볼라라고 하죠)을 메카 방향에 두고 있어요.
(우리 서울 이태원의 회교 사원은 그 제단이 서쪽에 있습니다. 터어키의 불루 모스크의
제단은 동쪽에 있고요).
이 청진사는 서기 742년 당나라 현종 때 세워졌다고 합니다. 양귀비랑 연애하면서도 이국 종교인 이슬람교 사원을 세울 정도로 멋진 황제였는데 이 때 쯤은 아마 슬슬 맛이 가기 시작해서 정치는 대신들에게 맡기고 한참 술과 양귀비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였을 겁니다.
명나라 목패방을 지나 들어가면 성심전이며 봉황정 같은 정자와 건물, 그리고 강희제,
도광제 등 역대 황제들이 내린 비석들, 건륭제가 세운 문들이 서 있습니다. 청진사는
당나라 때 세워졌지만 송, 원, 명, 청 역대 왕조를 거치면서 중건과 수리를 반복해서 당나라 때 건물은 없어요. 역사가 천 3백년이나 되는데 목조 건물이 남아나겠습니까? 그리고 양 옆의 작은 방에는 명나라와 청나라 때 골동품 가구들도 많이 있었어요. 역대 아홍(회교 사원 주지) 들 중에 가구 장사를 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아주 진귀한 것들이었죠. 모두
자단목이며 티크였으니까요. 탐나더군요.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니까 명나라, 청나라 황제들의 비석은 사원 경내에 세워져 있는 데 이상하게 현종 때 세운 창건비는 골방 한 쪽에 대충 세워져 있더라고요. 복제품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비석이 작아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그 창건비 옆에서 재미있는 비석을 하나 봤죠. 이겁니다.
. 청관석이라는 글자가 보이죠? 이게 재미있는 데 당나라와 송나라 때까지 과거시험을
보는 사람이나 관리가 되고 싶은 사람, 그리고 관리인데 승진하고 싶은 사람은 이 비석에다 기도드리고 못을 박아봤대요. 그래서 못이 들어가면 합격, 임용, 승진이 된다는 겁니다. 비석 가운데 못이 박힌 게 몇 개 보일 겁니다. 안 박히면요? 그야 불합격, 누락이죠 뭐.
재미있더군요. 모르긴 몰라도 이 비석가지고 시주 돈 꽤나 울궈먹었을 겁니다.
이 청진사에는 아까 말한 명나라 때 목패방 (보통 차이나타운 앞에 서 있는 패루입니다)외에도 이슬람 달력을 아라비아 문자로 새겨 넣은 월비(月碑)가 유명해요. 그래서 그걸 보려고 갔더니만 장롱 같은 데다 집어넣곤 자물쇠로 잠가 놨어요. 이슬람 사원이니까 아라비아 문자가 새겨진 비석은 좀 있지만 이 월비는 당나라 때 만들어 진 진짜거든요. 속상했죠.
그래서 그 비석 근처에 있는 간이 목욕탕(이슬람교 사원은 신자들이 기도하기 전에 손발과 몸을 씻어야 하기 때문에 사원 안에 이런 간이 목욕탕이나 세면장이 반드시 있습니다) 앞에 있는 회민 영감님들에게 뭘 좀 물어 보려고 급히 갔는데 이런 절 본 터키 아줌마 한 떼거리가 그 목욕탕 건물이 이 들어가도 되는 곳인 줄 알고 용감하게 따라 들어 온 겁니다.
한자를 모르는데다 영어 안내도 없고 관광객 행색인 제가 들어가려고 하니까 무작정 들어 온 거죠. 스카프를 두른 터키 아줌마들 열 댓 명이 목욕탕으로 쳐들어오자 그 앞에 앉아 졸고 있던 회민 영감님들 혼비백산했어요. 가이드가 뛰어 오고 아홍(주지)이 소리치고 중국
보통화와 섬서성 방언, 회민들의 이상한 아랍어, 그리고 아줌마들의 터키어가 난무하고
손사래와 놀란 표정이 교차하면서 사태는 겨우 수습되었지만 본의 아닌 원인 제공자였던 전 한 쪽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어요(살람 알레이쿰! 수고하셨습니다).
결국 알고 보니까 그 월비는 훼손을 막기 위해 잠가 놓았고 높은 사람이 오거나 회교도들의 기념일에만 열어서 공개한대요. 그 난리를 피운 것에 비하면 너무나 뻔한 대답.
알았다----! 그러면 본당이나 보자하고 발길을 옮겼습니다. 본당은 청진사의 제일 안 쪽 그러니까 서쪽 끝에 있습니다. 여기 회민들은 예배대전이라고 하는 데 절로 치면 대웅전이죠.
하지만 우상숭배를 금하는 이슬람교 본당이라 대전 안은 아무 것도 없고 그냥 넓은 마루입니다. 제가 애독하는 책 <중국 100배 즐기기>에 의하면 천 명이 앉아 예배를 볼 수 있다고합니다만 그 날은 한산했어요. 시주함만 덩그러니 있더군요. 1위안짜리 몇 장 넣고 절 한 번 한 다음 나오면서 대전 현판 사진을 찍었습니다.
서안 청진사의 아라비아 어 현판. 현판내용은 <알라는 유일신이다>라는 뜻입니다.
이슬람력 1365년이니까 622년을 더해서 1987년 정도에 만든 현판이지. 만든 사람은 馬
아무개라는 중국 이슬람교 회장. 중국 이슬람교 신자들, 즉 회민 들 중 많은 사람들이
馬씨입니다. 아랍 이름 마호멧(이슬람교 창시자 이름이기도 하죠)에서 유래한 성씨가 분명합니다. 이 회민들은 당나라 때 중국에 온 아랍인의 후손입니다. 우리 신라 때 처용의 사촌들이죠. 이젠 중국화해서 아랍인의 흔적은 별로 찾아 볼 수 없지만 이 사람들 고생 많이 했어요. 청나라 때는 엄청 박해를 받아서 반란도 두 번인가 화끈하게 일으켰는데 중일 전쟁 때는 일본 놈들 때려잡는 선봉이었습니다. 이 청진사는 쓸 데 없이 바쁘기 마련인 관광객인 제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 곳입니다. 그리고 회민들의 슬픈 역사를 알고 가면 좀 숙연한 기분도 드는 곳이죠. 이 청진사 옆이 회민거리니까 다음엔 회민들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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