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임시정부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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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진모 댓글 0건 조회 1,425회 작성일 04-12-07 10:08본문
메트로폴리탄의 화려한 거물들 뒤에 감춰진 비개발 지역 ...... 마땅로(馬當路).
큰 백화점과 식당, 상점들을 지나면 70년 이상 된 석조건물을 만난다. 오래된 건물 벽은 이제는 거무스름하게 변해 그때 당시의 역사를 대신하는 듯 같다. 바로 이곳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글귀가 쓰여진 동판을 만날 수 있다.
알고 찾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울 만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자신도 모르게 ‘이런 곳에?’라는 의문부터 떠올리게 하는 임정청사는 눈물과 땀으로 흠뻑 젖은 역사의 한 장면처럼 찾으려 노력해야만 찾을 수 있도록 숨어있는 듯 하다.
이곳에 들어서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정부로서, 성립 이후부터 조국이 광복될 때까지 약 30년 간 독립운동의 최고의 지휘부요, 우리민족 최고의 대표기관이었다”는 국사교과서 설명으로 학창시절부터 키워온 막연한 감정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끊이지 않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문닫을 시간까지 계속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 관리처 뻬이민치앙(貝民强) 주임에 따르면 지난해 임시정부를 방문한 관광객이 약 12만 2천명이 넘었으며, 학생들의 방학기간인 최근에는 반달동안 이곳을 찾은 방문객이 1만명이나 되는데 대다수가 한국 초,중,고등학생이라고 한다.
대문은 중국 근대 건축 양식의 하나인 석고문 양식으로 된 임정청사는 현재 《중국 유물보호법》에 의해 유물로 보호받고 있다. 3층으로 구성된 한 채의 가정집에 김구선생의 사무실 겸 침실, 임시정부 요인의 숙소와 회의실이 있다.
현재 이곳은 또 한중 양국 국민의 전통적 우의를 증명해주는 상징물로서 양국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는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
1990년 한국 정부관리와 학자들로 구성된 임시정부 조사단이 현지시찰을 왔을 때, 오직 마당로 306농 4호만이 양국의 논란 없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의 유적지로서 보존 가치가 가장 높다고 인정되었다. 이후 임정청사 건물의 보전을 위한 공사가 1992년 9월, 1993년 3월 등 3차례에 걸쳐 상해시인민정부, 노만구(廬彎區)인민정부의 협조와 한국 독립기념관과 삼성물산의 자금지원으로 이루어졌다. 1993년 4월 13일 임정청사는 복원된 모습으로 일반인들에게 첫 선을 보이게 된다.
임정청사 내의 가구와 물품들은 임시정부 시절 사용하던 것도 있지만 소실된 것들은 그때 당시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던 것을 구비해 놓은 것이다.
3층의 ‘사료전시실’은 지난해 전면적인 개보수를 마치고 12월 19일 새로 확장된 곳이다. 한국 독립기념관측이 중국 상해 임시청사 관리처 등의 적극적인 협력 아래 주민 8가구를 이주시키고 기존 3층짜리 연립가옥형태의 벽돌건물(대지 64㎡<19.5평>,건물면적 147㎡<44.5평>)의 좌우 1채씩을 확보해 넓히고 낡고 헌 부분을 전면 개보수했다.
17㎡에 불과했던 전시실이 102㎡로 대폭 확장돼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언서와 같은 실물자료 전시를 통해 정치, 경제, 문화, 군사활동 등 임시정부 활동상을 볼 수 있다.
한국독립기념관의 조범래 책임연구원은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은 관광코스의 한곳으로 낡고 초라하다는 생각만을 하고 그저 스쳐지나갈 뿐입니다”라며 안타까워한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유적지 대부분이 개발과정에서 사라져 이곳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며 “지금 보고있는 이 낡은 곳에 터를 잡기 위해 당시의 독립운동가들은 14번이나 옮겼고 극빈한 생활을 감수했죠. 가난으로 허기졌던 그들의 고난을 느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을 덧붙였다.
★주 소 : 上海市 馬當路 306弄
★전 화 : 5382-9554
★입장료 : 15위엔
큰 백화점과 식당, 상점들을 지나면 70년 이상 된 석조건물을 만난다. 오래된 건물 벽은 이제는 거무스름하게 변해 그때 당시의 역사를 대신하는 듯 같다. 바로 이곳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글귀가 쓰여진 동판을 만날 수 있다.
알고 찾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울 만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자신도 모르게 ‘이런 곳에?’라는 의문부터 떠올리게 하는 임정청사는 눈물과 땀으로 흠뻑 젖은 역사의 한 장면처럼 찾으려 노력해야만 찾을 수 있도록 숨어있는 듯 하다.
이곳에 들어서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정부로서, 성립 이후부터 조국이 광복될 때까지 약 30년 간 독립운동의 최고의 지휘부요, 우리민족 최고의 대표기관이었다”는 국사교과서 설명으로 학창시절부터 키워온 막연한 감정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끊이지 않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문닫을 시간까지 계속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 관리처 뻬이민치앙(貝民强) 주임에 따르면 지난해 임시정부를 방문한 관광객이 약 12만 2천명이 넘었으며, 학생들의 방학기간인 최근에는 반달동안 이곳을 찾은 방문객이 1만명이나 되는데 대다수가 한국 초,중,고등학생이라고 한다.
대문은 중국 근대 건축 양식의 하나인 석고문 양식으로 된 임정청사는 현재 《중국 유물보호법》에 의해 유물로 보호받고 있다. 3층으로 구성된 한 채의 가정집에 김구선생의 사무실 겸 침실, 임시정부 요인의 숙소와 회의실이 있다.
현재 이곳은 또 한중 양국 국민의 전통적 우의를 증명해주는 상징물로서 양국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는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
1990년 한국 정부관리와 학자들로 구성된 임시정부 조사단이 현지시찰을 왔을 때, 오직 마당로 306농 4호만이 양국의 논란 없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의 유적지로서 보존 가치가 가장 높다고 인정되었다. 이후 임정청사 건물의 보전을 위한 공사가 1992년 9월, 1993년 3월 등 3차례에 걸쳐 상해시인민정부, 노만구(廬彎區)인민정부의 협조와 한국 독립기념관과 삼성물산의 자금지원으로 이루어졌다. 1993년 4월 13일 임정청사는 복원된 모습으로 일반인들에게 첫 선을 보이게 된다.
임정청사 내의 가구와 물품들은 임시정부 시절 사용하던 것도 있지만 소실된 것들은 그때 당시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던 것을 구비해 놓은 것이다.
3층의 ‘사료전시실’은 지난해 전면적인 개보수를 마치고 12월 19일 새로 확장된 곳이다. 한국 독립기념관측이 중국 상해 임시청사 관리처 등의 적극적인 협력 아래 주민 8가구를 이주시키고 기존 3층짜리 연립가옥형태의 벽돌건물(대지 64㎡<19.5평>,건물면적 147㎡<44.5평>)의 좌우 1채씩을 확보해 넓히고 낡고 헌 부분을 전면 개보수했다.
17㎡에 불과했던 전시실이 102㎡로 대폭 확장돼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언서와 같은 실물자료 전시를 통해 정치, 경제, 문화, 군사활동 등 임시정부 활동상을 볼 수 있다.
한국독립기념관의 조범래 책임연구원은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은 관광코스의 한곳으로 낡고 초라하다는 생각만을 하고 그저 스쳐지나갈 뿐입니다”라며 안타까워한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유적지 대부분이 개발과정에서 사라져 이곳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며 “지금 보고있는 이 낡은 곳에 터를 잡기 위해 당시의 독립운동가들은 14번이나 옮겼고 극빈한 생활을 감수했죠. 가난으로 허기졌던 그들의 고난을 느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을 덧붙였다.
★주 소 : 上海市 馬當路 306弄
★전 화 : 5382-9554
★입장료 : 15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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