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먹한 만남이었다. 베이징 수도공항의 널찍한 도착 홈. 여행사와 사람을 찾는 플래카드가 널려 있는 그곳에 ‘알자 중국여행- 오마이뉴스 베이징 테마여행’이라는 푯말을 든 김진천 가이드와의 사전 만남은 물론이고, 한참 후에야 하나둘씩 나오는 테마여행 참가자들은 생소한 베이징의 풍경만큼이나 서먹했다.
버스에 올라타고, 공항을 빠져 나와 가로수들이 막 물이 오르는 도로를 지나면서 글쟁이(필자)는 올해 황사의 예측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건조한 북방의 날씨로 인해 지난해에 비해서는 황사가 많겠지만 그 전에 비해서는 작을 거라는 간단한 예측이다.
사실 서서히 황사가 다가오는 시간에 기획한 베이징 테마기행은 적지 않은 불안감이 있다. 잘못하면 황사 구경하다가 사흘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4일간의 기상예보에서 날씨는 비교적 평온하고, 황사근원지에서 황사도 없어서 베이징은 얼마간 평온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글쟁이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가이드는 서서히 중국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간다. 비교적 공정하고, 지식도 풍부한 가이드여서 마음을 놓기 시작한다. 참가자들도 시각과 청각으로 서서히 베이징을 느끼기 시작한다.
▲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후통 여행차의 모습
ⓒ 조창완
차는 번잡한 시내를 통과해 징산공위앤(경산공원) 오른쪽 문 앞에서 선다. 첫 번째 여행지인 후통(胡同)이다. 후통은 베이징의 '피맛골'이다. 구궁(자금성)은 황제가 살았고, 후통에서는 재상에서 서민까지 골고루 살았다. 사방을 막아놓은 사합원(四合院)의 구조로 위에서 보면 네모 상자들의 전시장이다. 보통 수십명의 가족들이 이 네모난 공간의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후통여행은 '후통여행'이라는 작은 인력거로 다니는 게 보통이다. 물론 여행자를 위한 것이다. 후통여행은 일반 서민들이 먹거리를 장만하는 시장에서 유아원, 정식 사합원 건물로 이어졌다.
우리가 방문한 사합원에서는 현지에서 거주하는 마음 넉넉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해바라기씨를 내놓는 한편, 아이들에게는 사탕을 쥐어 줘 넉넉한 중국인들의 심성을 보여준다. 다시 맑은 풍경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인력거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와 왕푸징(王府井)에 들른다.
스태프로 참여한 이들(필자/ 박현숙/ 박호령 카메라맨)로 조를 짜는 한편 길에 자신 있는 이들은 독자적으로 자율여행을 시작한다. 왕푸징은 베이징의 명동이다. 베이징 최고, 최대의 시장, 백화점들은 물론이고 외문서점과 왕푸징 서점 등이 있어 식자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또 천주교 성당과 불운했던 현대 문인 라오서(老舍)의 고가 등이 있는 있다.
또 전갈, 썩힌 두부, 병아리구이등 온갖 먹거리가 그득한 샤오스핀지에(小食品街)는 물론이고 스타벅스나 맥도널드(중국명 마이땅라오) 등도 있는 곳이다. 참가자들은 흥미와 각자의 취항에 따라 둘러본다.
▲ 경극과 변검 등을 본 노사차관. 문혁의 시작을 알린 비극적인 문인 라오서에게서 이름을 빌렸다.
ⓒ 조창완
저녁은 베이징 음식의 대표 중에 하나인 베이징 카오야(베이징 오리요리)다. 160년의 역사를 가진 첸먼(前門) 치엔쥐더(全聚德)의 입구에는 이곳에서 사용된 오리의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 이미 1억 마리가 넘었다. 중국 오리들에게는 최악의 장소인 셈이다.
하지만 '베이징 덕'은 오리가 지방이 가장 많게 만들어 요리하는 관계로 기름기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의 입맛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오리의 지방은 건강에 해가 되지 않고, 전병이나 파 등을 넣어먹는 맛은 그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첫날(3월 18일)부터의 강행군은 9시 무렵 호텔에 들어서면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내면 안된다는 게 진행자들의 생각이다. 그 도시를 알려면 밤 문화를 알아야한다는 신조로 운영진은 베이징의 이태원 ‘싼리툰’(三里屯)으로 침투할 조를 모집한다. 도합 10명이 모이고, 이 멤버들은 3대의 택시에 나누어 타고 약속 장소를 잡아 그곳을 향한다.
5년 전만 해도 이곳은 라오와이(老外 외국인)들이 집중적으로 모이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외국 대사관과 더불어 대기업의 북경 사무실이 이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의 청년문화가 이곳을 거의 점령했다.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바들에서는 길게 머리를 딴 밴드들이 노래를 하고 있다.
우리가 박현숙씨의 안내로 들른 곳은 사장이 공산당원이라는 한 라이브 바다. 사실 공산당원은 아무나 될 수 없다. 사상은 물론이고 지성, 계층적 특성 등 갖가지 자격이 필요하다. 그런데 공산당원이 락을 부르는 술집을 운영한다는 곳에서 타이거 맥주를 느끼며, 테마여행 첫날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한 병에 우리 돈 5000원에 해당하는 맥주값도 무섭고, 아침부터 꽉 짜여있는 일정이 무서워 자정을 넘기기 무섭게 다시 택시를 나누어 타고, 호텔로 돌아온다.
갈수록 커지는 베이징 읽기의 갈망
▲ 구궁(자금성)을 여행하는 테마여행팀. 항상 공부하는 자세의 특이한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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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날(3월 19일)의 주무대는 베이징의 서북향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구궁으로 향한다. 왕푸징에서 황궁을 둘러싼 해자인 호성하를 거쳐 오문(午門)으로 들어서 만나는 구궁의 면모야 굳이 첨언할 필요가 없다.
일찍 점심을 마치고, 이허위안(이화원)에 들른다. 이미 아편전쟁으로 청나라가 저물어갈 때, 정권을 잡고 있는 서태후는 군대를 기르기 보다는 이곳을 정돈하기 바빴다. 결국 대리석 배인 석방은 인력으로 판 호수 쿤밍후 위에 떠 있었지만, 청나라는 그 호수 속으로 점점 가라앉았다.
서태후가 연극을 보던 덕화전(德和殿), 그녀가 걸었던 길이 800미터로 수만의 그림이 그려진 긴 복도 장랑(長廊) 등을 보면서 여행자들은 역사의 허무함과 봄날의 나른함을 골고루 느낀다.
북문으로 이허위안을 빠져나와 다시 베이징대학에 들른다. 대학이라기 보다는 고풍 찬연한 서원 같은 베이징대학은 아직까지도 단층의 고건물을 캠퍼스로 쓰는 곳이다. 물론 거대한 건축물들이 곳곳에 들어서 과거의 풍모와 급성장하는 중국의 모습을 같이 갖고 있다.
외국인 접대센터에서 학교에 대한 소개를 듣고, 학교 상징 배지를 하나씩 차고 나와 급수탑이 있는 웨이밍후(未名湖) 등을 거쳐서 에드가 스노우의 무덤에 들른다.
서양에는 한 저널리스트일 수 있지만 중국에게는 영원한 친구라는 말이 그만큼 어울리는 이가 있을까. 대장정을 마친 홍군의 진지에 파고 들어가 그들과 생활하고, 그들의 신념을 글로 풀어낸 책 ‘중국의 붉은 별’은 단순한 개인 역정에 대한 전기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는 홍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가 베이징대학 한 켠에 묻혀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 아이들은 아무런 말도 없는 중국 현대 교육의 아버지 차이위앤페이의 동상 앞에 선다.
ⓒ 조창완
누군가가 바치고 간 꽃이 놓여진 그의 무덤을 지나, 중국 근대 교육의 아버지 차이위앤페이(蔡元培)의 동상을 보니, 짧게 나마 베이징 대학을 봤다. 이번 테마여행에는 7명의 꼬마들이 참가했다. 건성건성하게 보겠지만 아이들은 서서히 중국을 느껴 가는 지 그다지 특이할 것 없는 차이위앤페이 동상에서 포즈를 취한다.
칭화대(청화대)는 대문만을 보고 테마여행 세미나가 있는 장소로 자리를 옮긴다. 이번 테마의 안내자 박현숙씨는 중국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자연스럽게 풀어간다. 처음에 이질적이던 중국문화와의 만남에서, 자신의 중국관을 많이 바꾸어준 신장여행, 그리고 자신의 개인사까지 풀어간다.
▲ 딱딱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너무 흥미 있어서 시간가는 줄 몰랐던 세미나시간.
ⓒ 조창완
세미나는 예정보다 30분 정도 늘어날 만큼 진지하다. 참가자들도 자신의 관점에서부터 아이들의 조기교육까지 다양한 관심사로 질문을 한다. 세미나를 마친 일행은 다시 바삐 버스에 올라 신장(新疆) 전문 음식점이자 중국의 놀이문화를 볼 수 있는 아판티로 향한다. 이곳을 찾는 처음 단체 손님이라 현지 여행사도 당혹해하던 곳.
양고기가 주재료고, 향료가 독특해서 걱정을 했지만 참가자들은 의외로 이 특이한 음식을 즐긴다. 거기에 식사 후 시작되는 신장 전통 공연은 수준이나 흥미에 있어서 참가자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9시 공연이 끝나고 시작되는 자유시간이 있지만 여행단은 일찍 자리에 뜬다. 못내 아쉬워하는 몇 젊은이들에게는 훗날을 기약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 신장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아판티에서의 식사.
ⓒ 조창완
이미 9시가 넘은 시간 많이 힘들다. 하지만 베이징의 밤은 아직 길다. 둘째날의 밤은 서민들의 선술집인 동즈먼(東直門) 꾸이지에(鬼街)다. 더러는 아판티에서 직접 그곳으로 향하고, 더러는 호텔에서 집을 정리한 후 동즈먼의 밤거리에 모인다. 철이 아닌 관계로 롱샤(龍鰕)는 먹지 않았지만, 사합원에 만들어진 술집에서 둘째날이 가는 아쉬움을 바이지우(白酒)에 절이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일어선다. 다음날 일정은 새벽 5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톈안먼에서 만리장성으로
▲ 천안문 광장에서 찍은 단체사진
ⓒ 조창완
▲ 멀리서 왔을 아이의 국기게양식 관람 모습
ⓒ 조창완
셋째날(3월 20일)은 중국의 아침이 열리는 것에서 시작했다. 아침 5시 모닝콜로 일어난 참가자들은 5시 40분 버스를 타고 텐안먼(天安門) 광장으로 향했다. 바로 중국의 국기 게양식을 보기 위해서다.
이른 시간이지만 톈안먼 광장의 한켠이 인산인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다. 아이들에게 무등을 태우고, 사람들 너머로 시작되는 국기게양식을 본다. 해뜨는 시간에 맞추어 시작되는 국기게양식 시간은 6시 10분. 아직 찬기가 가시지 않은 광장에 모인 이들은 중국 국가에 맞추어 올라가는 깃발을 보면서 중국인임을 상기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참가자들은 중국의 부각과 더불어 혹시 피어날지 모르는 제국주의적 근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다시 톈안먼 광장을 향한다. 마오쩌둥 기념관에 들르기 위해서다. 하지만 기념관으로 향하는 길에 선 줄을 보고, 참가자들은 일단 기가 꺾인다. 기념관을 에둘러 선 행렬의 후미에 서자면 적어도 한두 시간은 기다려야할 듯 하다.
아침 국기게양식을 본 것만도 충분한데, 하는 마음에 역사박물관으로 향한다. 역사 박물관에서는 윈난을 근거로 하던 뎬 문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2500년의 시간을 지난 유물이지만 지금에서도 전혀 미적 감각이 뒤쳐지지 않는다.
한족 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 하지만 이미 한족의 영역에 들어온 문화는 정말 박물(剝物)이 되어버렸는지 모르지만 그 문화적 깊이는 그런 문제의식 너무 고대 문화의 깊이를 실감케 한다. 가이드는 중국의 중요한 보물은 대부분 장쩨스(장개석)의 대만 피신 당시 3000개의 상자에 실려 대만으로 갔다고 하지만 워낙에 큰 땅이 지닌 보물이 없을 리 만무하다.
▲ 이보다 더 맑을 순 없다. 테마여행이 들렀을 때 만리장성 모습
ⓒ 조창완
박물관을 나와 점심을 마치고, 빠다링 만리장성으로 향했다. 인간이 만든 가장 거대한 유산이다. 한(漢)대부터 수많은 피와 땀이 들어간 장성이 제 기능을 한 것은 현대에서 관광지로서 수익을 벌어들이는 정도다.
봄철 황사로 인해 장성의 면모를 못볼까하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창핑(昌平)을 지나면서 만나는 옌산(燕山)의 줄기는 더없이 맑고 깨끗했다. 가장 날이 맑은 가을철에도 만나기 힘든 맑은 날이다. 케이블카를 통해 올라가고, 내려와 주마간산격으로 만나는 만리장성이지만 참가자들은 인간고통의 현장에서 그 웅대함에 다시 한번 놀란다.
셋째날의 저녁은 중국의 가장 흥미로운 맛 가운데 하나인 훠궈(샤브샤브)로 마치고, 숙소로 들어온다. 테마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그냥 보낼 수 없다. 멀리 가기 보다는 숙소의 근처에서 시간을 약속하고, 근처 꼬치집에 모였다. 열댓명이 참여해 꼬치와 훈툰(작은 만둣국) 등으로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랜다. 여전히 열을 올리기도 하고 다양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결국 호텔 지하의 바에서 2차까지 한 후 숙소에 돌아온다.
아쉬운 이별, 그러나 여행의 인연은 지속된다
셋째날은 여유있게 일어난다. 호텔 인근의 톈단공원을 들른다. 정문에서 들어가면서 만나는 공원은 문화재보다 중국인들이 어떻게 삶을 영위하는지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춤, 제기, 태극권, 악기 등 모든 오락기능을 동원해 자신을 즐길 줄 안다.
공터에서 춤을 추는 이들을 보면서 약간은 아쉬운 듯 발길을 돌리는 참가자들 앞에는 기년전의 거대한 웅자가 기다리고 있다.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곳.
▲ 리우리창의 장점을 따온 고물시장인 판지아위앤 모습
ⓒ 조창완
오른쪽 문으로 빠져 나와 홍치아오 시장에 들른다. 베이징에서 가장 서민적인 시장이다. 취향에 맞게 선물이나 자신의 쓸 물건을 쇼핑한다. 그곳을 본 후 베이징의 골동품시장 판지아위앤(潘家園)에 들린다. 리우리창이 자신의 성벽으로 몰락했다면 판지아위앤은 오히려 그 영역을 확대하는 곳이다.
중국에도 ‘진품명품’류의 방송까지 타니, 주말에는 제각기 보물을 찾기 위해 그곳에 몰려든다. 또 문화대혁명 시기의 물건들은 시장의 한 축을 차지해 중국 현대사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이로써 4일간의 일정이 끝났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참가자들은 집으로 가는 기쁨보다, 이제 시작된 중국 읽기를 멈추어야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계속 지속된다. 1차 테마여행 참가자들은 알자 중국여행 사이트에 만들어진 게시판을 통해 추억을 되살리고, 4월 말 모임을 통해 서울에서 다시금 뭉친다. 짧은 인연을 긴 호흡으로 끌어갈 수 있다는 것이 즐겁고 반갑다.
이 글은 지난 3월 18일부터 21일까지, 오마이뉴스-알자중국이 함께하는 '박현숙 테마여행'을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동영상 편집: 정규호
알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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